느슨한 IMO 규제, 코로나19 등에 저유황유 수요 발목
정유사들이 올해 초 야심 차게 도입한 저유황 중유(LSFO) 사업이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수익성이 악화한 데다, 예상보다 느슨한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규제에 오히려 고유황 중유(HSFO)의 판매 비중이 늘고 있는 탓이다.
31일 싱가포르 해양 항만청에 따르면 7월 기준 선박 연료유로 쓰인 HSFO(싱가포르 380CST 기준) 판매량은 6월보다 24.65% 증가하며 올해 들어 최고치를 기록했다.
2개월 연속 증가세다. 판매 비중은 같은 기간 총 벙커C유 판매의 24%에 달했다.
업계에서는 8월에도 증가세를 이어갔을 것으로 전망한다.
HSFO란 연료에 황이 2% 이상 함유된 유류를 말한다. IMO는 올해부터 선박유의 황 함유량을 3.5%에서 0.5% 아래로 낮추도록 규제를 강화했다.
업계에서는 HSFO 수요가 크게 줄고 황 함량을 줄인 LSFO의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지만, 정반대의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에너지 분야 정보분석업체 S&P 글로벌 플래츠에 따르면 싱가포르 시장에서 거래되는 LSFO와 HSFO의 100만 톤당 가격 스프레드는 1월 평균 298.9달러에서 8월 64.98달러까지 좁혀졌다.
이는 해당 기간 LSFO의 수요가 줄어든 반면, HSFO의 수요는 증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환경규제 강화로 올해부터 HSFO 수요가 거의 사라질 것으로 본 정유사들이 일찌감치 LSFO 재고를 쌓으면서 가격이 올라갔었다”며 “하지만 올해 막상 상황을 보니 전혀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이 선박유 동향이 애초 예상과는 다른 건 IMO의 규제가 실질적인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박유를 본격적으로 제재하기 위해서는 항구마다 기준을 세우고 검사를 하고 집행을 해야 하는데, 그것부터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다. 더구나 코로나19가 터지면서 규제를 강화하기는커녕 풀어주는 분위기가 됐다.
이에 대해 정유업계 관계자는 “애초에 스크러버를 장착해 황 배출을 낮춘 배들은 HSFO를 구매할 것으로 예상하긴 했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은 배들까지도 그냥 HSFO를 쓰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은 특히 일찌감치 LSFO 관련 투자를 해온 국내 업체들에는 ‘악재’다.
SK에너지는 1조 원을 투입해 감압잔사유 탈황설비(VRDS)를 새로 지었다. 당시 글로벌 정유업계에서는 한국 정유사들의 LSFO 준비 상황이 가장 빠르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앞으로 원유 가격의 상승세가 LSFO 가격을 끌어올릴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본격적으로 수요를 회복하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다른 정유업계 관계자는 “결국 언젠가는 HSFO가 시장에서 퇴출당할 것”이라면서도 “당장 코로나19 등 변수 때문에 단기간에 LSFO 수요를 늘리기는 어렵고 수익성도 개선되기 힘들 것이다. 그때까지는 가동률 조정 등을 통해 수급을 조절해 나가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