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가 행진 여전… 현실과 동떨어진 전세 통계로 시장 불신 확산
서울 전셋값 상승세가 한풀 꺾였다는 한국감정원 조사가 나왔다. 감정원 통계를 두고 신뢰성 논란이 거듭되는 와중이어서 시장 체감도는 아직 떨어진다.
한국감정원은 지난달 31일 기준(조사 기간 8월 25일~31일) 서울 전셋값이 전주보다 0.09% 상승했다고 9일 발표했다. 지난해 7월부터 시작된 전셋값 상승 흐름은 62주째 이어지고 있지만 상승률은 지난주(0.11%)보다 둔화했다. 같은 기간 전국 아파트 전셋값 상승률도 0.16%에서 0.15%로 조금 줄었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 주간 상승률 0.1% 아래로 떨어져"
서울 아파트 전셋값 주간 상승률이 0.1% 아래로 떨어진 건 6월 말 이후 두 달 만이다. 지난달엔 한 달 동안 0.65% 상승하면서 일곱 달 만에 가장 큰 오름폭을 기록했다. 주택 임대차 계약 기간을 최대 4년까지 보장하고 보증금ㆍ임대료 증액 폭을 최대 5%로 제한한 주택 임대차보호법이 7월 말 시행되면서 미리 전셋값을 크게 올리는 집주인이 늘었기 때문이다. 금리가 낮아지자 전셋집을 월세로 돌리는 풍조가 퍼지면서 전셋집 자체도 귀해졌다.
감정원은 "교육 환경이 양호한 지역 또는 역세권 위주로 상승세가 지속됐으나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 시행 등으로 거래 활동이 위축되며 상승 폭이 축소됐다"고 해석했다. 감정원 관계자는 "코로나19가 퍼지면서 전세를 구하려는 활동이 줄었다"며 "전세 매물 가격 상승률도 전주보다는 높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시장은 '갸우뚱'… 강남4구 상승률 여전히 가파르고 신고가 잇달아
하지만 시장에선 고개를 갸웃거리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또 전세난 우려가 해소됐다고 보기 이르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이번 조사만 해도 서울에선 전셋값 상승률이 매매가격 상승률(0.01%)을 크게 웃돈다. 거주 여건이 좋은 강동구(0.17%)와 서초ㆍ강남ㆍ송파구(각 0.13%)에선 여전히 전셋값 상승률이 가파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감정원 통계만 놓고 보더라도 전셋값 상승 폭이 줄어든 기간이 짧은 만큼 둔화를 추세적으로 보기는 아직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완화되고 가을 이사철이 본격화하면 전셋값이 다시 고개를 들 수 있다는 뜻이다.
전셋값 신고가 행진도 그치지 않고 있다. 서울 은평구 진관동 '은평뉴타운 엘크루' 전용면적 84㎡형은 2일 5억 원 비싼 값에 전세 계약이 체결되면서 신고가를 갈아치웠다. 7월만 해도 이 아파트에선 4억 원에 전셋집을 구할 수 있었지만 두 달 만에 전세 보증금이 1억 원 뛰었다. 도봉구 방학동 '신동아 2단지'에서도 같은 날 직전 실거래가(2억8000만 원)보다 9000만 원에 전용 84㎡짜리 전셋집이 나갔다.
◇감정원의 적은 표본ㆍ조사 방법 도마 위
이 때문에 감정원이 집계하는 전셋값 추이가 다른 조사 기관이나 시장 체감도와 괴리돼 있다는 불신도 여전하다. KB국민은행 역시 매주 서울 아파트 전셋값 동향을 발표하는데, 감정원에서 내놓은 상승률과 많게는 7배까지 차이가 난다.
조사 방법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감정원 주간 조사는 표본 9400가구를 대상으로 취합한 실거래가를 중심으로 집계하는데, 이는 국민은행이 쓰는 표본(3만4000가구)의 3분의 1도 안된다. 또 실제 계약과 실거래가 신고 사이엔 최장 한 달 동안 시차가 벌어질 수 있어 통계가 시세 흐름을 못 따라갈 수도 있다. 여기에 감정원이 추산한 '거래 가능한 금액' 범위에서 벗어난 거래가는 통계에서 제외하기 때문에 자의적인 통계를 낼 수 있다는 비판도 받는다.
정부가 주택시장이 안정을 되찾고 있다는 근거로 감정원 통계를 내세우면서 감정원 조사를 바라보는 시선은 더 차가워지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감정원도 이 같은 시선을 의식, 내년부터는 주간 아파트 동향 조사에 쓰는 표본 가구를 1만3720가구로 늘릴 계획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부동산 가격 조사는 표본 조사이기 때문에 오차가 있을 수 있지만 그 오차는 조사 기관별로 5% 이내여야 한다"며 "통계를 호도하는 정치권이 시장의 불신을 더 키우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