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특정 다수에게 자금을 모아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크라우드 펀딩(Cloud funding). 소비자가 직접 참여하는 크라우드 펀딩은 가장 최신의 소비·문화 트렌드를 잘 보여줍니다. 현재 주목받고 있는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이를 통해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얻고자 합니다.
아이디어 하나로 성공할 수 있는 크라우드 펀딩은 작은 이야기가 성장하기 가장 좋은 플랫폼이다. 2018년 한해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에세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역시 텀블벅에서 처음 시작됐다. 3년이나 지난 지금도 한 사람의 삶에 귀 기울이는 '작은 이야기' 트렌드는 계속되고 있다. 그중 올해 크라우드 펀딩에서 가장 눈에 띄고 주목할만한 작은 이야기 프로젝트를 모았다.
텀블벅의 문학·에세이 카테고리에서 현재 가장 주목받고 있는 프로젝트는 '롤모델보다 레퍼런스'다. 9일 0시 마감을 앞두고 8일 오후 3시 현재 목표 금액의 522%(1044만5000원)를 모았다. 책은 '여성과 일'을 주제로 대학생이 인생 선배들과 나눈 대화를 담았다. '나만의 독립적인 삶과 공간을 만들 수 있을까요?',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될 수 있나요?', '나의 일과 가치가 공존할 수 있을까요?'라는 주제별로 3권으로 나눠 구성됐다.
제목을 '롤모델보다 레퍼런스'로 지은 건 인생 선배의 답이 정답 같은 롤모델보다 레퍼런스가 됐기 때문이다. 프로젝트를 기획한 진저티프로젝트 전혜영 팀장은 "처음 기획 때와 달리, 인터뷰를 진행하며 '나의 일'고민에 딱 맞는 롤모델 찾기란 애당초 불가능하단 걸 깨달았다"며 "20대 초반의 대학생 6명은 '저자'가 되었고 12명의 인터뷰이는 자기만의 길을 걷기 위해 참고할 수 있는 좋은 '레퍼런스'가 됐다"고 전했다.
텀블벅에서 눈에 띄는 또 다른 프로젝트는 '인생사진없는 인생여행기'다. 펀딩 마감까지 5일을 남겨둔 8일 현재 목표 금액의 221%(124만4777원)를 달성했다. 책에는 20대의 3분의 1은 한국이 아닌 29개국에서 보냈던 해영 작가의 여행 이야기가 담겼다. SNS에 자랑할만한 사진 대신 '나다운 여행' 이야기책을 목표로 했다.
책에 담긴 이야기는 화려하기보다 주로 가치관에 영향을 미친 사건들이다. 그중 하나는 호주에서 겪은 자동차 사고다. 운전 경험이 없던 해영 작가는 호주에서 처음 중고차를 사서 운전하다 사고를 겪었다. 해영 작가는 "그 후 운전대를 잡지 않을 정도로 별로 달갑지 않은 일이었지만, 이상하게 책에는 담고 싶었다"고 전했다.
역동적이고 다양한 삶을 사는 노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도 있다. 올해 초 와디즈에서 목표 금액 123%(246만1114원)를 달성한 '노인1인칭이 세상의 3인칭에게 : 인칭일기'다. 프로젝트 이름은 '노인 스스로 1인칭 주인공이 돼 이야기를 나누고, 세상의 많은 3인칭과 만남'을 뜻한다.
프로젝트는 노인의 삶을 단편적으로 그리는 미디어에 대한 물음표에서 시작됐다. 서울노인복지센터 장혜영 사회복지사는 "어르신의 모습을 일러스트로 제작하려 의뢰하는데, 쪽진 할머니와 지팡이를 든 할아버지를 그렸다"며 "복지센터에서 매일 만나는 2000여 명의 어르신 중에서 이런 모습을 하신 분도 있지만, 그 모습이 다는 아니다"라고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인칭일기에 참여하는 모든 어르신 모두 '홍시', '소나무' 같은 예명을 지었다. 남이 지은 별명이 아닌 스스로 지은 예명이다. 책의 마지막 두 페이지는 ‘당신이 꿈꾸는 노년은 어떤 모습인가요?’라는 질문에 대한 후원자들의 답변으로 채웠다. 장혜영 사회복지사는 "노인 1인칭의 이야기와 3인칭의 이야기를 한 눈에 볼 수 있다면 또 다른 만남이 될 것이라 기대했다"고 밝혔다.
지역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프로젝트도 있다. DMZ 접경지역의 이야기를 담은 매거진 'ABOUT DMZ'(어바웃 DMZ)다. 올해 봄 네이버 해피빈에서 목표 금액 140%(70만1400원)를 달성했다. 군사나 전쟁, 평화 이야기가 아닌 지역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프로젝트를 기획한 '올어바웃'은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지역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모여 탄생했다. 올어바웃은 "이야기로 지역을 살릴 수 있다고 믿는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이야기로 지역을 브랜딩한다. 프로젝트의 기본 원칙은 경험이다. 직접 먹고, 자고, 즐기며 숨어있는 장소와 사람의 이야기를 취재했다. 이야기별로 적합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한 책자에서도 인터뷰·체험기· 설문조사 등 다양한 방법을 사용했다. 굿즈 역시 이야기를 담는 하나의 콘텐츠가 됐다.
DMZ 프로젝트의 첫 시작은 철원이었다. 지역에 대한 편견을 깨고자 철원을 '액티브'(Active·활동적인) 철원으로 명명했다. 올어바웃 측은 "한탄강 래프팅, 얼음트래킹, 탐조 등 철원에는 역동적인 활동이 많다"며 그중에서도 철원의 액티브함을 만들어내는 건 지역 주민"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소개한 프로젝트 모두 '남과 다른 시선'과 '나다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다. 정답 같은 롤모델보다 자신만의 길을 위한 레퍼런스를 발견하고, 화려한 여행 사진보다 자신만의 여행 이야기에 집중했다. 또 노인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물음표를 던지며 진정한 자신을 드러내고, 모두가 서울의 집값을 이야기하는 시대에 지역에 귀를 기울인다.
해영 작가는 인터뷰 중 핑크 펭귄 이야기를 하며 '남과 다른 시선'과 '나다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핑크 펭귄'이라는 책을 보고 느낀 것이 있는데, 나는 일평생 (화려하고 눈에 띄는) 핑크 펭귄이 될 수 없겠더라. 하지만 화려한 여행자들이 넘치다 보면 정작 그냥 펭귄이자 평범한 여행자인 내가 돋보이는 날도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