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적인 돈이 오고가는 자본시장에서는 전 세계에 내로라하는 전문가들과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시시각각 쏟아져 나오는 정보 속에서 치열한 승부를 펼치고 있다.
합리적이어야 하고 근거가 있어야 움직일 것 같은 이 시장도 간혹 아니 자주 ‘말 한 마디’에 요동친다.
1994년 삼성전자가 반도체사업에 뛰어든 이후 최대 호황을 맞은 시기다. 주가도 사상 처음으로 10만 원대에 진입했다. 그러나 반도체 공급과잉이라는 메릴린치의 리포트로 삼성전자 주가는 8만 원대로 급락하는 조정을 경험했다.
2013년 삼성전자는 JP모건, 모건스탠리 등 외국계 증권사의 잇단 하향 평가로 주가가 10% 이상 급락했다.
올해 8월 6일 미국계 모건스탠리는 SK하이닉스 투자의견을 ‘비중 확대’에서 ‘비중 축소’로 변경했다. 그 충격에 이날 하이닉스의 주가는 5% 가까이 빠졌다.
같은달 13일 골드만삭스가 셀트리온의 적정주가를 시가의 절반 수준으로 후려치는 보고서를 내자 셀트리온 주가는 4% 이상 떨어졌다. 하루 사이 시가총액이 1조5,000억원가량 날아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불안 심리가 나타난 것이라고 하지만 하나둘 터져 나온 ‘말 한 마디’들은 촉매제 역할을 했다.
최근 홍콩계 증권사인 CLSA가 ‘문재인 대통령의 펀드 매니저 데뷔’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세금을 동원한 손실 보전, 투자자의 모럴해저드, 금융시장 버블 우려 등을 지적했다.
뉴딜펀드를 시작도 전에 문제가 있다는 ‘말 한마디’에 시장을 요동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명박정부의 ‘녹색성장펀드’나 박근혜정부의 ‘통일펀드’처럼 세금 먹는 관제펀드가 되지 않을까 우려감만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발표한 한국판 뉴딜사업 구상과 뉴딜 금융지원 방안은 5년간 총 20조 원 규모의 ‘정책형 뉴딜펀드’ 등 뉴딜펀드를 만들고, 정책금융기관과 민간금융회사가 각각 100조 원, 70조 원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이 자금으로 한국판 뉴딜프로젝트와 뉴딜기업에 투입해 2025년까지 일자리 190만 개를 창출하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한국판 뉴딜은 시중 유동성을 부동산 대신 생산적인 투자부문으로 유도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정부는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뿐 아니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 이후 글로벌 경제를 선도하는 기회로 삼고 있다.
이처럼 정부의 선도 투자에 이어 민간투자를 유치해 민간 중심의 자생적인 뉴딜 생태계를 구축해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시중에 뿌려진 풍부한 유동성을 생산적인 부문으로 흡수ㆍ활용해 위기극복 및 경기 회복을 꾀한다는 것이다.
정부도 투자자들에게 수익을 안겨 표를 얻겠다는 발상보다, 신산업 발목을 잡는 규제 혁신을 통해 기업이 투자할 환경을 조성하는 데 집중한다면 성공적인 사례로 남을수 있는 상황에서 외국계 보고서로 인해 논란이 커질 필요 없다.
논어에 ‘사불급설(駟不及舌)’이라는 말이 나온다. 직역하면 “네 마리 말이 끄는 빠른 수레도 사람의 혀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즉 소문은 빨리 퍼지므로 말 조심을 하라는 의미이자 말을 신중하게 해야 함을 강조한 구절이다.
적어도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 정도는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자본시장에서는 더 그렇다. 무심코 던진 ‘말 한 마디’ 때문에 선량한 사람들이 큰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