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공무원 5급 공개채용시험에 합격한 뒤 연수 도중 동료의 뒷모습을 허락 없이 촬영해 퇴학 당한 남성이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서울고법 행정9부(재판장 김시철 부장판사)는 10일 A 씨가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을 상대로 "퇴학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A 씨는 이른바 행정고시에 합격해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에 교육생으로 입소했다. A 씨는 지난해 5월 10일 강의실에서 전지에 팀이름, 구호, 팀원별 역할 등을 적어넣는 활동을 하던 중 무음 사진 촬영을 지원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사진 2장을 찍었다.
A 씨가 찍은 첫 번째 사진은 레깅스를 입은 여성 B 씨가 허리를 굽힌 상태로 다리 일부가 노출된 장면이 촬영됐고, 3초 후에 찍힌 두 번째 사진에는 B 씨가 서 있는 모습이 담겼다.
인재개발원은 같은 달 23일 A 씨가 '고의로 다른 교육생의 다리 일부가 노출된 사진을 촬영했다'는 이유로 퇴학 처분을 내리고 검찰에 불법 촬영 혐의로 A 씨를 고발했다.
검찰은 △포렌식 결과 음란 사진 및 영상 등이 발견되지 않은 점 △문제의 사진 촬영 3초 후 노출이 없는 사진이 촬영된 점 등을 감안하면 A 씨가 범죄의 고의를 갖고 해당 사진을 촬영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인재개발원은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항고했으나 지난 3월 기각됐다.
1심은 A 씨가 B 씨의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한 신체 부위를 촬영한 것이라는 점은 인정했다. 레깅스를 피해자가 스스로 착용한 것이라고 해도 순간적으로 해당 부분이 드러나는 것을 넘어 사진의 형태로 촬영되는 것까지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다고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1심은 인재개발원이 퇴학 처분을 위해 수집한 증거만으로는 A 씨가 고의로 사진을 촬영한 것을 인정할 수 없다고 봤다. A 씨가 수업 시간에 공개적으로 사진을 촬영해 몰래 촬영하는 범행 방식과는 차이가 있고, 포렌식 결과 부적절한 사진이 발견되지 않은 점을 보면 무음 애플리케이션은 몰래 찍으려는 용도가 아니라 평상 시에 사용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2심은 1심에서 인정한 '사진 촬영의 고의가 없다'는 것에 더해 인재개발원의 퇴학 처분이 절차적으로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A 씨가 조사를 통해 결백을 밝혀달라며 휴대전화 디지털 포렌식에 응하는 등 자발적으로 협조했는데도 진술서 열람 등을 거부하고 9일 만에 절차를 마무리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인재개발원이 공정성을 지키면서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해 조사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도 퇴학 처분까지 일사천리로 절차를 마무리한 것은 A 씨의 방어권 행사 기회를 실질적으로 제한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문제의 사진이 찍히고 3초 뒤에 피해자가 서 있는 장면이 다시 촬영됐는데, 검찰의 불기소 처분의 근거가 된 촬영 순서를 바꿔 피해자에게 제시해 오도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