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아베 정권 시즌 2'…정부 "WTO 제소 절차 예정대로 진행하되 문제 해결 위한 대화 지속"
업계, 추가 규제 예의주시…"여전히 일본의존도 높은 품목 많아"
전문가 "획기적인 변화 기대 어려워…관계 개선 위한 전략적 고뇌 필요"
일본의 총리가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으로 사실상 확정됐지만 한국과 일본의 무역전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아베 정권 시즌 2’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절차를 예정대로 진행하고 기존의 일본 수출규제 대응과 통상 정책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업계는 일본 수출규제가 전화위복이 되고 있다면서도 추가 제재를 우려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양국 관계의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지만 일본의 리더십이 바뀐 것은 일종의 기회가 될 수 있어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전략적인 고뇌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WTO 제소 절차 예정대로…대화는 지속” = 일본의 차기 총리로 확정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한일 관계 악화의 근본 문제인 한국 대법원 징용 판결이 한일 청구권 협정 위반이라는 기존 주장 되풀이하고 있다. 이는 한일 무역갈등에도 극적인 반전은 없을 것이라는 의미다.
우리 정부 역시 기존의 수출 규제 대응방식과 통상 정책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일본은 지난해 7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노역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핵심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3개 품목의 수출 규제를 단행했다. 8월에는 자국 기업이 수출할 때 승인 절차 간소화 혜택을 인정하는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했다.
이에 한국 정부는 즉각 반발, 일본의 수출제한조치로 한국에 대한 수출이 불필요하게 지연되고 불확실성과 비용 등이 증가했다고 지적하며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WTO 분쟁해결기구는 올해 7월 일본의 수출제한조치 분쟁과 관련, 한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분쟁해결절차에서 1심 역할을 하는 패널의 설치를 확정, 패널위원 구성 절차를 진행 중이다.
WTO 재판은 통상 1~2년이 소요된다. 다만 결과에 불복해 상소가 제기된다면 양국 간 다툼은 3년 이상으로 장기화할 수 있다. 한일 수산물 분쟁의 경우 약 4년이 걸렸다.
정부 관계자는 "WTO 분쟁해결은 사법 절차이기 때문에 정무적인 판단이 개입되지 않는다"며 "기존의 일본 수출규제 대응과 통상 정책을 유지하면서 일본 내부 상황에 맞게 대응 전략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일본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인다면 앞으로의 상황이 바뀔 수는 있다"면서 "또 일본의 총리가 바뀐 것과는 별개로 양국의 경제 협력 관계는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할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업계, 반도체 등 추가 규제 예의주시 = 업계는 수출 규제 1년이 지나면서 소재 부품 국산화 속도가 높아지는 등 일본의 수출 규제가 전화위복이 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추가 제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여전히 여전히 일본의존도가 높은 품목이 많은 탓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대일(對日) 수입 상위 100개 품목 중 34종은 전년(2018년)보다 비중이 늘었다. 대표적으로 반도체 원재료 실리콘웨이퍼는 대일 수입 비중이 34.6%에서 40.7%로 늘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실리콘웨이퍼의 경우, SK실트론이 열심히 하고 있지만, 단숨에 일본 업체의 기술력을 따라가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노광 공정에서 사용되는 포토마스크 원재료 블랭크마스크도 마찬가지다. 호야, 신에츠 등 일본 기업이 90% 이상을 공급 중이다. 특히 차세대 EUV(극자외선)용은 호야가 독점하고 있다. EUV 공정을 도입한 삼성전자도 호야의 마스크를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자동차산업의 경우 일찌감치 기술적으로 일본 의존도를 낮춰왔다는 점은 다행이다. 기술 자립은 물론 토요타 정도를 제외하면 기술력은 오히려 한국차가 앞서 있다는 게 정설이다. 핵심기술 대부분도 독자 기술을 갖췄고, 부품 역시 마찬가지다. 단가가 낮은 부품은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에 발주 중이고, 핵심 부품은 현대모비스를 비롯해 국내 부품사의 기술력이 일본에 뒤지지 않는다.
◇"획기적인 변화 기대 어려워…전략적 고뇌 필요" = 통상 전문가들은 한일 간 통상 갈등이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양국관계가 더 나빠질 것이 없을 정도로 악화된 상황이나 쟁점을 풀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며 "우리는 가만히 있는데 일본만 달라질 것으로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일본의 리더십이 바뀌는 것은 일종의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정부의 전략적 고뇌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우리도 강제노역 후속 조치에 대한 입장 변화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