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효선 국제경제부 기자
2018년 개봉한 영화 ‘버드박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대사다. 눈을 뜨고 집 밖을 바라보면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는 괴현상 속에서 주인공 맬러리는 두 자녀와 함께 살아남기 위한 사투를 벌인다. 지옥 같은 상황에서 이들을 지켜주는 것이 바로 눈가리개다.
이 이야기는 마스크에 의지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무척 닮아 있어서 더욱 몰입하게 된다. 가끔 영화는 눈가리개를 한 주인공의 시선을 연출하기 위해 카메라에 검은 천을 씌워 비춰주는데, 밖을 나설 때마다 마스크를 써야 하는 현실과 겹치면서 숨이 턱턱 막혔다. 스크린 안에서도, 스크린 밖에서도 우리는 원인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원인 불명의 무언가에 의해 삶의 일부를 빼앗긴 채 살아가고 있다.
다만 현실에서는 영화와 달리 마스크 착용을 둘러싼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12월 말 코로나19가 처음 보고된 이후 8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세계는 마스크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듯싶다. 세계 곳곳에서는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한 정부의 대책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린다. 정부의 마스크 수칙 강제가 개인의 자유를 훼손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마스크를 열 겹 가까이 쓴 듯 가슴이 갑갑하다.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안전띠를 착용하지 않을 자유를 주장한다고 해서 그것을 권리로 받아들일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영화 ‘버드박스’ 속 주인공 일행은 역경을 헤치고 ‘안전 가옥’에 도착하는 데 성공한다. 밖에는 여전히 그들을 위협하는 악령이 존재하지만, 이곳에서 이들은 새를 풀어줄 수도, 자유롭게 뛰어놀 수도 있다. 하지만 카메라가 비춘, 둥근 철창으로 된 이곳의 천장이 어쩐지 버드박스(새장)와 닮아 있다. 행복해 보이지만 여전히 밖을 자유롭게 나갈 수도, 그곳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도 없는 현실.
2년 전 영화가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눈가리개를 벗어선 안 된다고. 완전히 자유롭진 못하지만 안전하고 행복한 버드박스가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