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환 국립농업과학원 농업생명자원부 연구관
'표현체 연구동' 건립 위해 4년 동안 농업 선진국 시설 견학
경험에 의존하던 전통농업 첨단기술 접목 디지털 육종으로
“2014년에는 국내에 작물표현체 시설이 없어 영국, 네덜란드 등 국외 시설을 견학하면서 4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연구 인프라를 구축했습니다.”
김경환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농업생명자원부 연구관은 작물표현체 연구동이 건립되기까지의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고 회상했다.
표현체 기술이란 카메라를 이용해 촬영된 작물 이미지로 키, 잎 면적 등 작물의 형태적 특징을 수치화·객관화해 분석하는 기술이다. 이를 활용해 우수한 자원 선발, 건조 등 스트레스의 양적 평가, 병 진단 등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린 벼를 영상으로 촬영하고, 어린 벼의 키, 생육면적 등의 형질과 다 자란 벼를 비교해 상관관계를 찾아내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작물이 다 크기 전에 미리 우수한 품종을 선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연구의 가장 큰 목적이다.
농진청은 2017년 국내 최초로 작물표현체 연구동을 건립하고 연구를 시작했다. 김 연구관은 “수년간 준비한 끝에 인프라를 구축했고, 이후 우리 실정에 맞게 장비를 제어, 운영, 관리하는 방법을 하나씩 해결할 수 있게 됐다”며 “콩, 벼 등 작물을 이용한 분석방법 확립 시에도 실측과 영상 분석값 간의 비교분석을 위해 일반적인 경우보다 오히려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했다”고 설명했다.
농진청의 작물표현체 연구동은 하루에 최대 2812개체를 가시광, 근적외선, 형광 등 6종의 카메라 센서를 이용해 연 150만 장, 45TB(테라바이트) 용량의 영상을 획득할 수 있는 국내 최대 연구시설이다.
표현체 연구동에서는 온실에서 재배된 작물이 컨베이어벨트로 영상장치가 있는 이미지 분석실로 이동하고, 다양한 영상장비로 이미지를 촬영해 DB에 저장한다. 연속적인 촬영 과정을 통해 저장된 이미지 정보는 작물생육시기별 크기, 생체량, 수량 등 농업형질을 디지털화, 객관화해 우수한 품종과 유전자를 구별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올해 여름 최장의 장마처럼 기후변화가 급격해지는 상황에서 우수 품종을 빠른 시간 안에 육성하기 위해서는 육묘 단계에서부터 우수한 개체를 선발할 필요가 있다. 이 때문에 전통 농업에서 경험에 의존하던 육종을 첨단 기술을 접목한 디지털 육종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요구가 더욱 높아졌다.
김 연구관은 “전통농업기술과 생명공학, 정보통신기술(ICT), 자동화, 인공지능 등 첨단 기술을 접목한 표현체 연구를 통해 육종 기간을 단축하고, 검정형질 수도 5배까지 늘렸다”며 “병해충 예방 등 표현체 기반 진단 기술을 응용해 농업생산성 향상과 농업기술 혁신에 기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경제적인 효과도 크다. 지난해 표현체 연구동에서 분석한 개체 수는 총 2205개. 만약 이를 외국에 분석 의뢰했다면 1개체당 65만 원, 총 14억3000만 원의 경비가 들지만, 국내 분석이 가능해 개체당 15만 원, 3억3000만 원으로 경비를 절감할 수 있었다.
특히 표현체 기술의 발달은 이제는 익숙해진 유전자분석 기술과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김 연구관은 “유전자분석 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유전체 정보는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표현형 정보는 측정·분석기술의 병목현상으로 부족한 실정이었다”며 “표현체·유전체 통합분석이 가능해지면 이를 바탕으로 생산량, 재해저항성, 병저항성 등의 농업형질과의 연관성을 해석할 수 있고 우수한 유전자, 품종, 유전자원도 선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의 목표는 더욱 다양한 분야와 접목해 공동연구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김 연구관은 “연구동 건립 이후 공학, 컴퓨터 전공자를 채용하여 장비운영, 작물형질 분석 등 본격적인 표현체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며 “표현체 연구는 농업, 프로그램, 기계 등 다학제적 융복합이 필요한 분야로 다양한 전문가 그룹이 함께 참여하는 오픈랩(open lab) 개념을 바탕으로 긴밀한 협업을 이뤄갈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