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교열팀장
‘돈사야’가 낯설어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이 많겠다. 돈사야는 ‘돈을 산다’는 뜻이다. 가난하던 시절 “돈은 사고 곡식은 판다”고 여긴 우리 조상의 삶이 뿌리깊게 담긴 순우리말이다. 어디 대추와 밤뿐이겠는가. 쌀, 팥, 콩 등 갖가지 곡식을 팔아 산 돈으로 필요한 물건을 샀다. ‘돈사야=팔아야’ 등식이 성립하는 셈이다. 우리말로 먹고사는 나조차도 쓰지 않는 말이니, 젊은 세대들은 들어본 적도 없을 게다. 그래서일까. 이 희한하고 재미있는 말 ‘돈사다’가 시(詩)에나마 살아 있어 다행이다.
‘장날’은 추석 즈음이면 떠오르는 시다. 싸리문, 성황당, 나귀 방울, 삽살개 등 시골 풍경이 동화처럼 그려져 정겹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엔 시의 느낌이 달라졌다. 보름달처럼 환한 얼굴로 “얘들아~” 하며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실 것만 같아 먹먹하다. 어느덧 오십 줄에 든 철부지 ‘이쁜이’는 아버지께 고운 추석빔을 선물해 드리고 싶은데, 세월 참 야속하다.
예전엔 추석이 다가오면 돈이 될 만한 실한 과일과 곡식을 바리바리 이고지고 장터로 향했다. 차례상에 올릴 음식과 아이들에게 입힐 새옷을 장만하기 위해서였다. 자동차가 흔하지 않던 시절, 걸음이 빠른 아버지들도 20리(7.85㎞)를 걸어가 장을 봐 돌아오면 달이 얼굴을 내밀었다. 새벽에 길을 나서 한밤중까지 걸어도 고단하기는커녕 절로 웃음이 나는 건 장바구니 속 생과자와 때때옷에 신이 나 팔짝팔짝 뛸 ‘이쁜이’ 생각 때문이었다.
요즘은 차례상을 간소하게 차리니 이런 풍경을 보기 힘들다. 송편은 물론 토란탕, 동태전, 돈저냐(일명 ‘동그랑땡’), 삼색 나물에 고기 산적까지 묶어 파는 이들도 생겨났다. 몸은 편할지언정 명절의 의미가 사라지는 듯해 안타깝다. 온 가족이 함께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도 하며 한마음이 되는 게 명절 아닌가.
추석 전날 온 식구가 둘러앉아 송편을 빚으며 밤잠을 설치던 추억은 언제나 따스하다. 달도 둥글고 상도 둥글고 하하호호 웃던 식구들의 입도 둥글어 마음까지 둥글둥글해졌다. 미당 서정주의 시 ‘추석 전날 달밤에 송편 빚을 때’ 역시 가족의 모습을 동화처럼 보여준다.
“추석 전날 달밤에 마루에 앉아/ 온 식구가 모여서 송편 빚을 때/ 그 속 푸른 풋콩 말아넣으면/ 휘영청 달빛은 더 밝아 오고/ 뒷산에서 노루들이 좋아 울었네.// “저 달빛엔 꽃가지도 휘이겠구나!”/ 달 보시고 어머니가 한마디 하면/ 대수풀에 올빼미도 덩달아 웃고/ 달님도 소리내어 깔깔거렸네./ 달님도 소리내어 깔깔거렸네.”
올 추석은 코로나19 탓에 예년과 분위기가 많이 바뀔 게다. 정부가 나서서 연일 고향에 못 가게 막고 있다. 살다 살다 처음 겪는 일이다. “아범아! 추석에 코로나 몰고 오지 말고 용돈만 보내라”, “조상님은 어차피 비대면, 코로나 걸리면 조상님 대면”, “불효자는 ‘옵’니다”…. 자자체들은 기발한 문구로 ‘고향 방문 자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아뿔싸! 정부도 지자체도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추석 연휴 기간 유명 여행지 숙박시설 예약이 꽉 찼단다. 며칠 전 모 방송사 저녁뉴스에 나온 촌로(村老)의 말이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오지 마라’, ‘오지 마라’ 해놓고도 명절에 차 소리 나면 부모는 문 구멍 내다보고 ‘내 아들 오나?’, ‘내 딸 오나?’ 기대를 하지…오지 마라 소리를 하긴 하지만….” jsjy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