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준칙 시행 2025년까지 유예…시행 시점에 기준치 조정될 수도
정부가 5일 재정준칙을 도입한 결정적인 배경은 추세적인 확장적 재정정책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목적의 재정지출 추가 확대에 따른 재정건전성 악화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37.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2018년 108.9%)을 크게 밑돌았기에 별도의 재정준칙을 마련할 필요가 적었다. 하지만 올해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기둔화 대응을 목적으로 네 차례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하면서 국가채무비율은 43.9%로 1년 새 6.2%포인트(P) 급등했다. 채무액은 846조9000억 원, 국민 1인당 약 1600만 원이다.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도 6.1% 적자가 예상된다.
2024년이 되면 국가채무액은 1327조 원, 국민 1인당 약 2600만 원까지 늘어나게 된다. 이는 3차 추경 기준으로, 실제 채무액은 이보다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장기적으론 추세적인 저출산·고령화와 잠재성장률 하락으로 2060년 국가채무비율은 최고 81.1%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현재까지 재정준칙을 도입한 국가는 전 세계 92개국이다. 선진국으로 범위를 좁히면 한국과 터키만 아직 재정준칙을 도입하지 않았다.
우리 정부는 이번 재정준칙 도입방안에서 재정의 지속가능성 확보와 재정의 역할을 함께 고려했다. 3대 핵심요소로는 준칙성과 보완성, 실효성을 제시했다.
준칙성 측면에선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60% 이내, 통합재정수지 –3% 이내를 재정건전성의 마지노선으로 정했다. 하나의 지표가 기준치를 초과해도 다른 지표가 기준치를 하회하면 준칙을 지킨 것으로 간주한다. 가령 국가채무비율이 60%를 초과하면, 통합재정수지 적자를 3% 이내로 낮춰야 한다. 이는 현재 한국의 국가채무 수준과 중장기 전망, 고령화 속도를 고려한 수치다. 통합재정수지 기준에는 중장기 재정여건과 해외사례 등을 고려했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사회보장성기금에서 대규모 흑자가 발생하는 특수성을 고려해 관리재정수지(통합재정수지-사회보장성기금수지)를 재정운용지표로 활용해왔다.
기준치를 초과하는 경우에는 재정건전화 대책 마련을 의무화한다. 대책에는 지출 효율화, 수입 증대 등 국가채무, 재정수지에 대한 구체적인 관리방안이 포함돼야 한다.
보완성 측면에선 경제위기 시 예외를 적용한다. 전쟁이나 대규모 재해, 글로벌 경제위기 등이 발생하는 경우, 한도 적용을 면제해 적극적으로 재정대응에 나서고, 이에 따른 채무비율 증가분은 한도 계산 시 1차 공제 후 3년에 걸쳐 25%씩 가산한다. 경기둔화 시에는 최장 3년간 통합재정수지 기준을 1%P 완화해 경기대응을 뒷받침한다. 경기둔화 판단에는 잠재성장률과 고용·생산지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선 재정준칙을 2025 회계연도부터 적용한다. 당장은 코로나19 상황이 지속하고 있고, 기준치 준수를 위한 이행기간도 필요해서다. 또 재정준칙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국가재정법 개정 등도 필요하다. 결국 현 정부에선 전망치 수준의 국가채무·재정적자 확대가 불가피하다. 재정준칙에서 제시된 국가채무·재정수지 기준치는 유동적이다. 정부는 기준치를 시행령에 위임하고, 이를 5년마다 재검토할 계획이다. 따라서 시행 시기에 기준치가 바뀔 수 있다.
이 밖에 정부는 재정부담을 수반하는 법률안 제출 시 구체적 재원조달방안도 첨부하도록 해 의무지출과 재원대책 간 연계성을 높일 방침이다. 또 초과세수 등 발생 시 채무 상환에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비율을 30%에서 50%로 확대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앞으로 저성과 예산사업, 집행 부진사업, 위기 시 한시적인 반영사업 등에 대한 강력한 지출구조조정 노력을 기울여 나가고, 탈루소득에는 과세 강화 등 세입기반 확충 노력도 적극적으로 전개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이 이날 공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부채, 가계부채, 기업부채를 합산한 총부채는 4916조 원, 국민 1인당 4251만 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다만 이 수치는 예정된 연금지출 등 충당부채까지 포함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빚’으로 표현되는 채무와는 다른 개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