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을 강요받는 삶…노인 빈곤율 OECD 회원국 중 최고…노후 준비할 기회도 없었어
서울 장지동 화훼마을에 사는 박미순(75·가명) 할머니는 매달 정부로부터 생계급여를 타지만 대부분 약값으로 지출한다. 외출은 엄두도 못 낸다. 집 앞 의자에 앉아 사람을 구경하며 하루를 보낸다. 같은 마을에 사는 동갑내기 김명자(가명) 할머니는 아픈 남편과 두 남매를 키우는 데 청춘을 바쳤다. 지금은 기댈 데가 없다. 그나마 있는 아들딸은 실업과 이혼으로 형편이 안 좋다. 손을 벌리기도 미안한 처지다. 폐지를 주워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기초생활보장수급자인 박병남(66·가명) 할아버지는 “나는 밥 벌려고 폐지 줍지만, 정부 일자리는 용돈 버는 노인들한테나 가능한 얘기”라고 토로했다.
대한민국의 노인들은 가난하다. 젊어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지만 남은 게 없다. 사회에서 만연한 저임금에 착취당했고, 가정에선 부모와 자녀를 모두 부양했다. 자신을 돌볼 여유가 없었다. 노후를 준비할 제도적 수단도 없었다. 국민연금, 퇴직연금, 주택연금 등 노후소득 보장제도들은 비교적 최근에야 도입됐다. 그 결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빈곤율이다. 대다수 노인이 가난을 선택하지 않았다. 사회에서, 가정에서 가난을 강요받았다.
경제 성장 과정에서 구멍 난 노인 복지는 아직도 제대로 메워지지 않고 있다. 2008년 기초노령연금, 2014년 기초연금(기초노령연금 개편)이 도입됐지만, 기초생활보장제도에 따른 생계급여 등과 중복 지급되지 않는다. 결국, 기초연금은 빈곤층 노인보단 차상위·중산층 노인을 위한 제도로 운영되고 있다. 주유원, 매장 계산원, 아파트 경비원 등 노인들이 주로 종사하던 일자리는 키오스크, 폐쇄회로(CC)TV 등으로 대체되고, 그나마 노인의 주거안정을 위한 임대주택 공급은 ‘혐오시설’로 낙인찍혀 공급지 인근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추진이 지연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미래의 노인이다. 현재 중장년층을 기대로 두면 미래의 빈곤층이 된다. 이는 사회·경제적으로도, 재정적으로도 후세대에 부담이다.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제주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70대 이상은 경제활동을 통한 소득 창출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주어진 조건으로 인정하고 재정으로 소득을 보전해주는 것밖엔 방법이 없다”며 “다만 10~20년이 지나 노년부양비가 지금의 2배에 이르는 상황에서도 빈곤층이 이렇게 많다면 지금의 일본보다 끔찍한 상황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