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김지영 교수 "유니폼 판타지, 공적·사적 영역 금기를 깨는 쾌감"
성적 대상화, 상상의 영역 아닌 'n번방' 같은 범죄와 연결
2일 첫 정규 앨범 타이틀곡 ‘러브식 걸즈’(Lovesick Girls)로 돌아온 걸그룹 블랙핑크. '빌보드 200' 차트 2위, 빌보드 '핫 100' 59위에 오르며 눈부신 성과를 거뒀지만 의도치 않은 논란에 휩싸였다. 뮤직비디오 속 제니 의상이 간호사를 성적 대상화 했다는 것이다. 비판이 제기되자 YG엔터테인먼트 측은 "예술이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대한간호협회와 보건의료노조가 비판하는 성명을 내고 논란이 이어지자, 7일 YG 측은 사과 후 "해당 부분 영상을 삭제하겠다"고 밝혔다.
'성적 대상화'란 성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인격이나 감정이 없는 물건처럼 취급하는 행위나 현상을 말한다. 간호사는 그동안 쉽게 성적 대상화되며 대중매체에서 왜곡된 이미지로 그려졌다. 실제 입는 유니폼과 동떨어져 있는 하이힐과 짧은 치마가 대표적이다.
복식은 본래 하나의 기호언어이자 무언의 통화체계다. 소속감과 단체성을 드러내는 유니폼은 일반 복식보다 시각적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상징과 표현이 더 강하게 함축돼 있다. 유니폼 안에 집단이 나타내고자 하는 정체성과 집단을 바라보는 사회문화적 시선이 담긴 것이다.
간호사뿐만이 아니다. 그동안 군인, 경찰, 승무원 등 유니폼 입은 여성은 미디어에서 자주 성적으로 묘사됐다. 성적 판타지라는 이름으로, 특정 직업군에 대한 성적 대상화는 그동안 끊임없이 미디어를 통해 확대·재생산됐다.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윤김지영 교수는 "특정 직업군에 대한 성적 대상화는 해당 여성을 성적으로 소유하고 제압한다는 환상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윤김지영 교수는 유니폼 입은 여성에게 유독 성적대상화가 발생하는 이유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분을 깨는 데서 금기를 깬다는 판타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유니폼 입은 여성들은 특정 직업군 안에서 노동하는 공적 영역에 있는 여성이지만, 성적 대상화될 때 사적 영역에 소환된다. 공사 영역의 구분을 무너뜨리며, 일종의 금기를 깨는 쾌감이 작용하는 것이다. 윤김지영 교수는 또 "여성을 (성적으로) 소유하거나 제압한다는 일종의 환상을 제공하기 때문에 일정한 권력욕의 확장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특정 직업군에 대한 성적대상화는 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인격과 존엄성을 해치고, 그들의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조망 받지 못하게 한다. 일각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러나 윤김지영 교수는 "표현의 자유는 다른 사람의 기본의 권리를 침해할 때 멈춰야 한다"며 "표현의 자유는 무제한적이지 않다"라고 못 박았다.
성적 대상화가 가진 더 큰 문제는 성범죄와도 연결된다는 점이다. 텔레그램 'n번방'에서도 교사, 간호사 등 특정 직업군 여성들에 대한 불법 촬영이나 지인 능욕이라는 합성방이 따로 존재했다. 윤김지영 교수는 "(성적 판타지가) 핼러윈 데이 코스튬 같은 상상의 영역에 따로 존재하지 않고, 성범죄와 일종의 연속체로 같이 연결됐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간호사들은 병원 노동자 중 가장 높은 비율로 성폭력에 노출돼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5일 입장문을 통해 "대중문화가 왜곡된 간호사의 이미지를 반복할수록 이러한 (간호사 성폭력) 상황은 더욱 악화할 뿐이다"라고 강조했다.
31일은 핼러윈 데이다. 여전히 포털에서는 특정 직업을 성적으로 묘사한 핼러윈 코스튬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정 직업군에 대한 성적 대상화, 이제는 멈춰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