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조던 벨포트. 26세가 되던 해 내가 소유했던 증권사 대표로 4900만 달러를 벌었는데, 주당 100만을 못 채워 꼭지 돌았었지…이 모든 것이 합법적이었나? 당연히 아니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더 울프 오브 더 월스트리트'(The Wolf of Wall Street, 2013)는 월가의 잘나가는 금융회사 대표 조던 벨포트의 화려한 삶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사치품으로 가득찬 저택과 으리으리한 리무진, 금발 미녀 아내. 꿈꾸는 듯한 기분을 선사하는 마약까지.
그도 처음에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조던이 월가에 들어선 건 22세 때. 증권 중개인을 꿈꾸던 조던은 로스차일드 증권회사에 어시스턴트로 취직한다. 반 년간 열심히 일해 어시스턴트 딱지를 떼고 중개인으로 출근한 첫 날. 블랙먼데이 사태(1987년 10월 19일)가 터져 조던은 일자리를 잃게 된다.
방황하던 그는 페니 스톡(Penny stock·주당 5달러 이하 장외 주식)을 파는 허름한 금융 회사에서 일하게 된다. 회사는 주식을 팔면 수수료 50%를 지급했다. 조던은 그곳에서 주식을 몇천 달러씩 팔아치우며 순식간에 돈을 모으고 마침내 직접 증권사를 세운다. 점점 돈 버는 재미에 중독된 그는 주가조작, 자금세탁까지 손댄다. 결국, 미국 FBI 수사까지 받게 되며 위기를 맞는다. 거짓으로 돈을 버는 그의 모습은 최근의 사모펀드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옵티머스자산운용 사모펀드는 2017년 12월부터 운용·판매됐다. 옵티머스는 안정적인 공공기관 매출 채권에 투자한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하지만, 이는 모두 거짓이었다. 펀드 자금의 98%는 실체가 없는 비상장 기업에 투자됐고, 이들 기업은 복잡한 과정을 거쳐 자금을 주식 등 위험 자산에 투자했다. 펀드 자금은 이미 발행한 사모사채를 차환 매입하는 '돌려막기'에도 이용됐다. 김재현 옵티머스 대표는 자신의 개인 명의 증권 계좌로 펀드 자금 수백억 원을 횡령하기도 했다.
현재 옵티머스 사건은 정관계 연루 의혹으로 2막을 맞고 있다. 엉터리 펀드를 만드는데 서류를 위조한 윤석호 변호사의 아내 이모 변호사는 전직 청와대 행정관 출신이다. 이 변호사는 지난해 3월부터 7개월간 옵티머스 계열사인 해덕파워웨이 사외이사로 일했고, 펀드 자금 수백억 원이 거친 업체 ‘셉틸리언’의 지분 50%를 보유했다.
정·관계 연루 의혹은 아직 실체가 불분명하다. 분명한 건 금융감독원과 판매사가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금감원은 부실한 펀드를 금융상품으로 등록시킨 뒤, 사후 관리에 소홀했다. NH투자증권을 비롯한 판매사 역시 판매 검증 과정이 부실했다.
영화 '더 울프 오브 더 월 스트리트'는 3시간 가까이 되는 긴 러닝타임 대부분을 외설과 욕설로 채운다. 영화의 3분의 1은 살색의 향연이다. 비속어(f**k)는 총 506번 쓰였는데, 영화 역사상 가장 많은 횟수라고 한다. 할리우드에서 손꼽히는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의 연출을 논하는 게 부담스럽긴 하나, 솔직히 지나친 살색과 f**k의 향연은 지루했다.
대신 눈길을 끈 것은 목소리로만 등장했던 투자자였다. 조던은 화려한 언변으로 부자가 될 수 있다며 고객에게 페니 스톡을 권유했다. 그가 고객에게 건넨 말은 대부분 달콤한 거짓말이었다. 고객은 그에 속아 평생 모은 돈을 휴짓조각이 될 가능성이 큰 주식에 투자했다. 고객이 투자를 결정하자, 조던은 수화기 너머 고객을 바보라 칭하며 손가락 욕을 선사한다. ‘평생 모은 돈을 잃었을 투자자의 심경도 이럴까?’
옵티머스 펀드에 돈을 넣은 투자자 대부분은 개인투자자(84.2%)다. 그중 절반 이상이 60대(24.6%)와 70대(29.0%)다. 아마 대부분 평생 성실하게 모아온 노후 자금일 것이다. 지난 여름, 보슬비가 내리던 여의도에서 피해자들을 만난 적 있다. 그곳에서 만난 한 70대 피해자의 호소가 이 영화를 보면서 다시금 기억에 떠올랐다.
“내 나이가 지금 70인데 내 말을 들어달라고 이렇게 지금 나와있어요. 가족도 아무도 모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