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영 부국장 겸 유통바이오부장
질병관리청은 작년에 독감 예방접종 기간에 백신을 맞고 일주일 이내 숨진 만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약 1500명이라는 수치까지 발표하며 백신과 사망의 인과관계가 분명치 않으므로 접종 중단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감염내과 교수 등 의료계 전문가들도 독감 백신 접종의 이익이 부작용보다 크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회는 일주일간 접종을 잠정 유보하고 백신 안전성의 의학적 근거를 확보하라고 정부에 요청하는가 하면, 포항시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나 개별 병원들은 접종 자제나 일시 유보에 나서고 있다.
이런 논란의 원인은 독감백신 상온노출 사고 대응에서 정부가 불신의 실마리를 제공한 데 있다고 본다. 실제 현장에서는 신성약품이 상온에 노출한 538만개 백신을 전수검사하고 적절한 회수와 폐기에 나섰더라면 바람직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한 의사는 “상온 노출 사고 직후 전량 폐기할 것으로 생각하고 물량 확보가 큰일이겠다 싶어 우선 가족들부터 접종시켰는데 소량만 폐기돼 놀랐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의사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망 사고가 일어난 백신업체와 유통사가 원인을 찾고, 이에 걸리는 시간이 2개월이라고 보면 올해는 문제가 된 물량을 다 폐기하고 해외에서 들여온 백신으로 모자란 물량을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제약업계에서도 뒷말이 나온다. 식약처가 평소엔 일반의약품에 약효와 무관한 바코드 인쇄나 포장 오류만 나와도 100% 물량 회수 조치를 내리는데 이번 상온 노출 백신은 일부만 수거해 의아했다는 것이다.
상온노출 사고 발생의 배경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정부 조달 백신 시스템의 문제점이 자리잡고 있다. 정부가 백신 입찰 과정에서 최저가 입찰제를 고집하다 보니 독감백신 제조나 유통에 경험이 부족하고 영세한 신성약품 같은 업체가 낙찰받아 이번 사태를 초래했다는 지적이 많다. 올해 독감 4가 백신만 놓고 보더라도 시장 가격은 1도즈당 1만6000원 수준인데 국내 조달 가격은 8620원으로 반토막이다. 백신 입찰가를 시중가의 70~80%에 책정해주는 미국과도 차이가 크다.
더욱이 낙찰업체 적격 심사 기준에 콜드체인 시스템 준수 역량은 아예 포함돼 있지도 않았고, 백신 유통사의 콜드체인시스템에 관리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건 충격적이다.
이번 기회에 국가백신 사업을 정상화하지 않으면 백신 주권도 그만큼 더 요원해진다. 최저가 입찰 정책은 그렇잖아도 백신 자급률이 40%대에 그치는 현실에서 백신 국산화에 걸림돌이다. 백신이 공공재의 성격이 강하다고 하지만 민간 기업에 계속 부담이 될 경우 연구개발(R&D)은 커녕 사업 지속가능성도 위협받을 수 있다. 일본의 경우 백신 물량 90%이상을 공기업이 담당해 자급화하고 있다. 코로나19는 앞으로 계속 인류와 함께할 가능성이 높고, 또다른 감염증의 습격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백신 주권은 그 어느때보다 중요하다.
특히 더 우려스러운 점은 국민들의 백신 불신이 코로나 백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백신 안정성에 대한 논란은 수십년 동안 제기돼왔고 어떤 곳에선 백신접종 반대 운동이 일어나기도 한다. 백신 개발의 원동력이 공공보건이 우선인지 정치나 경제논리에 휘둘리는지에 대한 논란도 진행형이다. ‘두얼굴의 백신’ 저자인 스튜어트 볼룸 암스테르담대 명예교수는 백신이 공동체의 건강을 보호하는데 유일하지는 않지만 매우 중요한 기술이라며 백신 기술 자체와 기술의 사용방식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 정부도 백신이라는 기술의 유익함을 국민들에게 꾸준히 알리고 기술의 사용방식을 투명하게 공개해 국민 신뢰를 탄탄하게 구축해야 코로나에서 벗어날 수 있다.
K방역을 잘 수행한 공을 인정받아 질병관리본부가 질병관리청으로 승격했지만, 혹독하게 겪은 메르스의 실패를 거울 삼았던 덕은 부인할 수 없다. 질병관리청은 이번 독감 백신 사태를 거울 삼아 국가 백신사업의 단추를 처음부터 다시 꿰야 K방역의 공든탑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