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별세] 지배구조 개편 노린 엘리엇 등 '벌처펀드' 들어오나

입력 2020-10-26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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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별세한 25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이 회장의 빈소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들어서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글로벌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주주들을 규합해 삼성그룹 지배구조에 어깃장을 놓았다. 이 분쟁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이건희 회장 지분이 제때 확실하게 상속되지 못하면 행동주의 헤지펀드 공격의 빌미갈 될 가능성이 충분해서다.

지난 1977년 미국 뉴욕에서 폴 싱어 회장이 출범시킨 엘리엇은 대주주 및 경영진을 상대로 경영 개선을 요구하며 주가를 높이는 전략을 취한다. 이 때문에 '소액주주의 대변인'이라는 평을 받기도 하지만 엘리엇은 벌처펀드(썩은 고기를 먹는 대머리독수리) 성향도 지녔다는 평가다. 벌처펀드는 약점을 보이는 기업 등의 지분을 사들여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투기자본을 뜻한다.

엘리엇과 같은 행동주의 펀드는 3~5% 정도 지분만으로도 다른 주주를 선동해 주식 매집, 반대 의견 제출, 자사 지분 매입 요구 등이 가능하다. 이러한 것들이 삼성의 지배구조개편 문제의 '길목'을 지키면 지배구조개편 방향이 아예 틀어지거나 원점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현대자동차그룹은 2018년 현대모비스를 분할한 뒤 글로비스와 합병해 지주사로 삼는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했으나 무산됐다. 당시 지배구조 개편에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엘리엇이 딴지를 걸었다. 지난해 현대차 주총에서는 엘리엇이 추천한 3인 사외이사 후보에 대해 외국인 주주들은 각각 45.8%, 49.2%, 53.1% 찬성표를 던져 외국인 주주들의 집결력의 힘을 보여줬다. 엘리엇의 공격 덕에 현대차의 주주 소통 능력이 높아졌다는 분석도 나오는 반면 국내 5대 그룹 중 유일하게 순환출자 고리를 끊지 못했다는 오점이 남는다.

해외 투자자를 가장한 한국인을 가리키는 이른바 '검은머리 외국인'도 시장 판을 흔들 가능성이 크다. 외국인 주식 보유 비율이 50%를 넘는 삼성전자는 행동주의 헤지펀드 공격에 취약한 상태다. 멍석도 깔리고 있다. 정부가 추진 중인 상법 개정안의 '3% 룰'이다. 재계는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한 상법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외국계 투기자본이 더 많은 의결권을 행사해 한국 기업 이사회를 좌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외국인 주주가 절반 정도만 뜻을 모은다면 전체 의결권의 25%를 확보해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앞서 엘리엇은 지난해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지분을 각각 2.9%, 2.6% 가진 상태에서 경영 참여를 선언했다.

정만기 한국산업연합포럼(KIAF) 회장은 "상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해외 투기 자본과 국외 경쟁 기업 추천 인사가 감사 겸 이사에 선임될 수 있다"며 "우리 군 작전회의에 적군이 참여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국내 15대 주요 상장사의 외국인 지분율과 대주주, 특수관계인 지분율, 엘리엇매니지먼트의 현대자동차 사외이사 선임 당시 외국인 주주 투표 성향을 고려해 분석한 결과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고 감사위원을 분리 선임할 경우 상장사 중 최대 13개사(87%)에서 헤지펀드 추천 인사를 감사위원 겸 이사로 선임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검찰이 이 부회장의 삼성그룹 불법합병 의혹 수사를 마무리하고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재판을 넘긴 것도 이 부회장의 주름을 깊게 하고 있다. 특히 엘리엇이 삼성물산과 제일 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의 불법적 개입 여부를 따지는 ISD 소송을 진행 중이여서 이 부회장이 유죄를 인정받게 된다면 경영권 승계 과정의 정당성이 훼손될 뿐만 아니라 대규모 국부 유출을 초래할 수 있단 전망도 나온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건희 회장 별세로 삼성의 미래는 더욱 불투명한 상황으로 빠지게 됐다"며 "사법 리스크 뿐만 아니라 경제3법 개정 시 제2의 엘리엇을 막기 힘들어 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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