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저가 아파트ㆍ단독주택, 보유세 오름폭 클 듯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윤곽이 드러났다. 10년 이상에 걸친 장기적인 공시가격 상향이 예고됐다. 이를 두고 조세 정의라는 명분과 세 부담 과중이라는 현실론이 맞선다.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연구를 맡은 국토연구원이 27일 공개한 현실화율(시세 반영률) 목표는 80%, 90%, 100%다. 이 가운데 정부ㆍ여당은 90% 안(案)에 마음을 두고 있다. 부동산 관련 세금을 매기는 공시가격을 시세 그대로 올리기엔 조세 저항 부담을 감당해야 한다. 그렇다고 목표를 낮추기엔 정확한 가치 반영이라는 현실화 취지가 훼손된다.
국토연구원 측은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90%가량 올리려면 15년가량 점진적인 상향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했다. 지역ㆍ유형별 공시가격을 평준화하면서도 급격한 세금 부담 증가는 막는 데 필요한 시간이다. 현실화율 90% 달성을 위한 시점은 부동산 유형별로 다른데 토지는 8년, 주택은 가격대에 따라 5~15년이 필요하다는 게 국토연구원 추산이다.
공시가격 현실화율 90%를 위해 가장 갈 길이 먼 부동산은 단독주택과 중ㆍ저가 공동주택이다. 단독주택 공시가격은 현재 시세의 절반 수준이고 9억 원 이하 아파트 공시가격 현실화율도 68%다. 그만큼 공시가격 상향 폭도 높을 수밖에 없다. 국토연구원은 9억 원 이하 단독ㆍ공동주택은 연(年) 3%포인트(P), 9억~15억 원대 단독주택과 15억 원 초과 단독주택은 각각 연 3.6%P, 4.5%P씩 현실화율을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부동산 과세 표준인 공시가격이 높아지면 조세 부담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현재 시세가 9억 원 안팎인 서울 성북구 길음동 '길음뉴타운 8단지 래미안' 아파트 전용면적 59㎡형을 예로 들면 중층 공시가격이 4억3300만 원으로 현실화율은 48% 수준이다. 한 해 보유세는 약 92만 원이다. 이 아파트 공시가격이 시세의 90%인 8억1000만 원으로 올라간다면 보유세는 2030년 225만 원으로 늘어난다. 올해 보유세 279만 원을 부과받은 공시가격 9억2000만 원짜리 서울 동작구 상도동 다가구주택도 국토연구원이 제시한 현실화 추이면 보유세가 최대 738만 원까지 늘 수 있다.
이 같은 세금 부담은 집값 상승을 반영하지 않고 추산한 결과다. 집값이 오르면 세금 부담은 이보다 더 커진다. 국토연구원도 조세 부담 증가를 의식해 9억 원 이하 주택은 2~3년간은 현실화율 상승 폭을 1% 미만으로 낮출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공시가격 현실화율 제고를 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국토부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공시가격 현실화를 꾸준히 추진해왔다. 공시가격 신뢰성을 높이고 조세 정의를 확립하겠다는 명분에서다. 시민사회 일각에서도 공시가격 현실화로 부동산 시장 정의를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은 "그동안엔 부동산 보유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체제였다. 세금이 제대로 매겨지지 않으니 투기가 쉬운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도 "공시가격 현실화로 보유세 부담이 늘더라도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높지 않다"고 했다.
다른 쪽에선 세금 부담 증가가 가져올 부작용을 우려한다. 그러잖아도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종합부동산세(종부세)나 양도소득세, 취득세 등 부동산 관련 세금 세율이 꾸준히 인상됐기 때문이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처럼 큰 폭으로 공시가격을 조정하는 건 미실현 소득에 대한 실질적인 증세로 볼 수 있다"며 "법률 위임을 정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났다고 생각되는 만큼 조세 법률주의(세목과 세율은 법률도 정한다는 원칙)에 따라 국회 동의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보유세 증가는 다주택자에게 특히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 랩장은 "규제지역의 다주택자는 최근 아파트 매입 임대사업자 제도 폐지와 보유세 인상, 거래세(양도세ㆍ취득세) 중과란 삼중고의 과세 늪에 빠져 진퇴양난이 된 상황"이라며 "주택 과다 보유자나 담세력이 떨어지는 다주택자는 내년 6월(양도세 중과 시점) 이전 매각이나 증여를 통한 포트폴리오 조정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윤지해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오래 전부터 예고된 사항이지만 주택 가치가 오르지 않아도 세금 부담이 늘어날 가능성이 큰 만큼 조세 저항이 일 수 있다"며 "월세 임대인의 경우 세입자에게 세금을 전가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