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상임대표는 서울 영등포구 사무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번 라임, 옵티머스 사태의 핵심은 사모펀드 활성화로 촉발된 ‘기획형 사기’라고 진단했다. 김득의 대표는 흥국생명에서 노조 활동을 이유로 해고됐고, 이후 SC제일은행 대출이자 문제로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시민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인물이다.
최근 라임·옵티머스자산운용 등 사모펀드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책임 주체를 찾기 위해 각 이해단체 간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그는 라임, 옵티머스 사태는 과거 2015년 7월, 자본시장법을 개정한 시점부터 예견된 일이었다고 지적했다.
당시 정부는 모험자본을 육성해 투자를 활성화하고, 금융산업 부가가치를 창출하겠다는 취지로 사모펀드 활성화 정책을 시행했다. 사모펀드 규제와 연관된 모든 빗장을 열면서 오히려 감시의 사각지대가 생겼다는 설명이다.
해당 법안을 살펴보면, 사모 자산운용사 운영에 필수적인 규제조차 풀어 사실상 불법행위에 대한 감독 자체가 불가능하도록 개정됐다. 우선 사모펀드 설립을 사전인가제에서 사후보고제로 만들고, 최소 자본금도 20억 원 수준으로 낮춰 업무 진입장벽이 낮아졌다.
김 대표는 “자본시장법 개정 이후에는 운용사, 수탁사, 판매사 간 상호 감시, 감독할 의무가 모두 사라지면서 어떤 자산에 투자했는지 서로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깜깜이 거래’를 한 셈이다”며 “자산운용사에 주어졌던 1년에 한 번, 회계보고의무도 면책되면서 감시 대상이 없어졌고, 결국 옵티머스와 같은 사기 사건이 발생할 수 있었다”고 꼬집었다.
이어 “경제엔 여·야가 없다”는 영화 ‘블랙머니’ 대사를 인용하며 이번 금융사기 문제 배후에 금융권 ‘모피아’들이 공범으로 협력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라임, 옵티머스 사태는 금융당국, 정관계 불법 로비 의혹으로도 번지고 있다. 정상적인 시장 규율이 작동하는 대신 인맥, 로비를 동원한 편법 경로가 자본시장에 견고하게 자리 잡았다는 분석이다.
실제 이혁진 옵티머스자산운용 창업주는 금감원에 민원을 제기하고, 검찰에 고발도 했지만, 어떤 것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한 바 있다. 한 인터뷰에서는 모피아(기재부 전신인 재무부와 마피아를 합친 용어)와 법비(법을 악용해 사적인 이익을 취하는 무리), 사기꾼이 만나 일으킨 최악의 금융 사기라며 억울함을 표하기도 했다. 금감원 연루도 확실해졌다. 과거 옵티머스자산운용 측이 금감원 고위층에게 로비한 정황도 드러났다. 금융당국이 사기 사건을 방조하는 수준을 넘어 협조하면서 일을 키웠다는 설명이다.
그는 “옵티머스자산운용은 명백한 사기 사건이며, 모피아 권력게이트로 봐야 한다”며 “현재 정치권에서 상대방 진영을 연루시키기 위해 단순 펀드 가입자 명단을 밝히고 있는데, 이는 사모펀드 사기 사태의 쟁점을 벗어나는 소모적 논쟁으로, 금융실명제법을 위반하는 행위로도 해석한다”고 언급했다.
김 대표는 금융사, 금융당국의 잘못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피해자를 위해 집단소송제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집단소송제도는 피해자 중 한 사람이라도 가해집단을 상대로 소송해 승소하면, 다른 피해자들은 별도의 소송 절차 없이 해당 판결을 기반으로 구제받을 수 있는 제도를 의미한다. 과거 김 대표 역시 SC제일은행을 상대로 이자 관련 소송을 걸어 승소하면서 인식 변화를 이끈 바 있다. 승소 후 금감원에 유사한 피해자 구제 민원을 제기해 금융사들이 반환하면서 사실상 집단소송 효력을 경험했다.
그는 “통상 일반 투자자들은 피해가 발생해도 거대한 금융회사를 상대로 개별적 대응을 진행하는 게 불가능하다”며 “NH투자증권 등 판매사들이 사모펀드 사태 이후 김앤장, 태평양, 율촌 등 대형 로펌을 선임해 대응하고 있는 점만 봐도 금융사들이 문제의 사전예방보다는 사후처방에 중점을 두고 있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도 강조했다. 금융사의 위법행위가 악의적·반사회적일 경우, 피해자에게 실제 손실액보다 훨씬 더 많은 금액을 배상하게 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현재는 징벌적 과징금제도가 적용돼 피해 금액의 일부만 국가에 과징금으로 내면 사건이 마무리된다. 금융 정책 결정에 담당자가 직접 연루된 경우에 한정해 손해배상청구소송이 가능하도록 만들면, 사전예방 효과도 나타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결국 신상필벌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김 대표는 “미국, 영국 등 금융선진국의 경우, 금융사고가 발생하면 ‘잘못하면 망한다’는 경각심이 생길 정도로 수십 년의 실형, 수백억 원대의 벌금을 부과해 사전 예방책으로도 인식된다”며 “국내 금융시스템은 미국식 자본주의를 지향하면서도 강력한 처벌은 이에 뒤따르지 않아 금융사고 원인으로 제기된다”고 언급했다.
금융회사 위주의 언어 프레임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언어는 사고방식을 결정하는데, 금융회사 중심 프레임이 널리 쓰이면서 피해자가 투자자로 호도된다는 관점이다. 예컨대 펀드 가입자는 투자자가 아니라 펀드를 고르고, 산 ‘금융상품 소비자라’는 단어가 더 적합하다. 은행은 불완전판매로 둔갑할 게 아니라 자본시장법(적합성ㆍ적격성 원칙ㆍ설명의무)을 위반한 ‘불법 판매’로 명명해야 한다는 것. 소비자 중심으로 금융 관련 단어를 바꾸는 과정 역시 경제민주화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가 시민운동에 뛰어든 지 7년째, 그는 여전히 흥국생명과 복직 투쟁을 벌이고 있다. 꼭 전 직장으로 복직하겠다는 그는 금융 관련 시민운동 이후 세상이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해외금리 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당시 80% 배상 비율이 나온 점, 라임 무역금융펀드에 100% 배상 권고가 나온 점 등 시민사회에서 목소리를 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자부했다. 우리은행, 국민은행 등 은행권 채용비리 역시 문제를 제기하기 전까지 관행적으로 내려온 일이었다. 그는 이런 지적을 누군가 해야 할 일이어서 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반 투자자들도 금융회사 말만 믿지 말고, 한 번 더 의심하고 관련 자료를 녹취하고 수집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자신도 금융회사에 투쟁을 벌이고 있는 피해자로, 구제 노력을 함께 하는 모든 과정이 경제민주화로 가는 길 위에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