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칼럼니스트
그런데 최근의 몇몇 실험들은 호킹 박사의 생각과는 달리 ‘시간을 거슬러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간다’는 게 아주 불가능하지만은 않다는 걸 보여준다. 현실 세계에선 어떨지 모르지만 적어도 수학적으론 시간여행이 가능한데, 그 일례가 블랙홀이다. 중력장이 너무 강해 빛을 포함한 그 무엇도 빠져나올 수 없는 시공간 영역을 블랙홀이라 하는데,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원리는 이런 블랙홀이 천체 중력 붕괴의 산물로서 자연에 수도 없이 존재한다고 예측했다.
일반상대성원리에서 중력장은 힘이 아닌 시공간의 휘어짐이다. 따라서 회전하는 블랙홀처럼 강한 중력장은 시공간을 극도로 비틀어서 소위 ‘닫힌 시간 곡선(closed time curve, CTC)’-혹은 ‘시간성폐곡선’이라고도 불린다-을 발생시키는 게 가능하다. 그리고 사람이 이 곡선을 따라 움직이면 과거로의 여행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호킹을 비롯한 많은 물리학자들은 CTC를 실현 불가능한 아이디어로 여겼는데, 이유는 인과관계의 위반 때문이다. 흔히 ‘할아버지 패러독스(Grandfather Paradox)’라 불리는 이 사고 실험은 만일 시간 여행자가 자신의 부모가 태어나기도 전의 과거로 여행해서 자신의 조부를 살해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결과적으로 자신은 태어날 수 없고 따라서 과거를 변화시키기 위해 시간여행을 떠난다는 가정은 논리적 모순을 가져온다. 이 모순을 해결하는 아이디어 중 하나가 ‘평행우주론(parallel universe)’이다. 할아버지가 죽은 우주와 살아 있는 우주가 나란히 존재할 수 있고 할아버지를 죽인 당신은 할아버지가 죽지 않은 다른 우주에서 온 존재가 되는 셈이다.
이 평행우주론의 강한 옹호론자면서 양자컴퓨터의 선구자이기도 한 옥스포드 대학의 데이비드 도이치(David Deutsch)는 양자역학의 확률론적 특성이 원인과 결과가 뒤엉키는 위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람 대신 양자 입자가 위의 곡선을 따라 시간여행을 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양자 입자는 1과 0의 혼합비가 각각 50퍼센트인 초기 상태를 갖는데, 시간여행에서 각각의 상태가 뒤집힌다고 해도 다시 말해 1이 0이 되고 0이 1로 바뀌는 상황이 된다고 해도 여전히 두 값의 비율이 50대 50인 상태가 된다. 이로써 자기일관성의 원리(self-consistency) 또한 만족된다. 즉, 자기일관성을 만족하는 우주에서는 과거로 여행해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 게 가능하지만 이로 인해 모순 상황이 발생할 확률은 제로다. 이런 도이치 모델은 2014년 호주 퀸즐랜드 대학의 마틴 링바우어(Martin Ringbauer)와 그의 동료들이 시뮬레이션을 통해 실험실에서 구현한 바 있고, 이로써 시간여행의 가능성이 확인되었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세스 로이드(Seth Lloyd)는 자기일관성 대신 양자 텔레포테이션(quantum teleportation)과 선택적 검출(Postselection)을 이용해 좀 더 온화한 방식으로 할아버지 패러독스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양자컴퓨터와 함께 영자역학의 기술적 응용의 한 예인 양자 텔레포테이션은 멀리 떨어진 지점 사이에 양자 상태 즉 정보의 전송을 뜻하는데, 전송 채널로 양자얽힘이란 게 사용된다. 세스의 모델에서는 CTC가 바로 이 전송채널처럼 작동한다.
과거의 잘못에 대한 후회 때문이든 현재 삶에 대한 불만족 때문이든 누구나 “내가 그때로 돌아간다면”이란 상상을 한번쯤 해보지만 아직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가능한 얘기다. 호킹 박사의 말처럼 애당초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고 혹은 오랫동안 종이에만 존재하는 인공물이었으나 이제는 실제 세계로 나온 블랙홀처럼 어느 미래에는 당연한 일이 될지도 모른다. 만일 내일이 그 미래라면 난 기꺼이 부모님이 살아계시던 과거 그 어느 날로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