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왕 제프리 건들라흐, 기업 사냥꾼 칼 아이칸, 헤지펀드 대가 존 폴슨, 골드만삭스 출신 앤서니 스카라무치. 2016년 미국 대선 때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도널드 트럼프의 승리를 적중시킨 월가 저명인사들이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선 이들 모두 침묵을 지키고 있다. 심지어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 지지를 선언한 이들조차 입을 다물고 있다. 이번 대선은 그만큼 불확실성이 크다는 의미다.
4년 전 트럼프에게 투표한 미국 투자조사회사 스트라테가스 리서치 파트너스의 제이슨 트레너트 회장은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4년 전에는 45개 주 고객들을 만나고 지역 주민들과 교류하면서 트럼프의 승리를 예감했다”며 “그러나 이번에는 승산이 50대 50”이라고 했다. 현재 뉴욕 맨해튼 자택에 틀어박혀 지낸다는 그는 이번에는 누구를 지지할지 분명히 하지 않았다.
건들라흐 더블라인캐피털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인터넷 방송에서 트럼프의 재선을 예상하면서도 “이번에는 훨씬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스카라무치의 경우, 지난 대선 때 트럼프 유세 현장을 함께 누비며 그의 인기를 피부로 느꼈다고 한다. 당시 그는 트럼프의 대항마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국민을 분열시키는 미움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1년 뒤 스카라무치는 백악관 공보국장에 임명됐으나 행정부 관리들과의 불화를 노출시키면서 열흘 만에 사임했다. 현재 반(反)트럼프 인사로 돌아선 그는 트럼프의 패배를 거의 확신하고 있다. 그는 트럼프의 재선 확률을 12분의 1로 봤다. 2016년 여론조사에서는 결과가 들쭉날쭉했지만, 이번에는 몇 달째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일관되게 우세해 신뢰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엔 트럼프가 클린턴이다. 국민을 갈라놓을 후보자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아이칸과 폴슨, 르네상스테크놀로지의 로버트 머서는 지난번 대선에서 모두 트럼프를 지지하며 기부금을 모으는 데도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폴슨은 올여름 뉴욕주 사우샘프턴의 자택에서 기부금 모금 행사를 개최하는 등 여전히 트럼프의 팬이다. 그는 WSJ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경제에 관해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다”며 “재선되면 더 잘 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트럼프의 승산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아이칸은 지난 대선 이후 입장이 다소 달라졌다. 그는 트럼프가 미국의 경기 확대를 지지할 것이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고, 트럼프가 취한 조치를 상당 부분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과의 무역전쟁에는 찬성하지 않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거리를 두고 있다.
2016년 대선 때 공화당 관련 단체에 2560만 달러를 기부한 머서는 올해 기부액이 26만4800달러로 줄었다. 트럼프의 재선에 그다지 큰 기대를 하고 있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