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ㆍ한국지엠ㆍ르노삼성, 교섭 여전히 진행 중…현대차ㆍ쌍용차는 큰 갈등 없이 마무리
올해가 두 달도 남지 않았지만, 완성차 업계의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이 마무리되지 못한 채 장기화하고 있다. 사 측과 의견 충돌을 지속하는 사이 한국지엠(GM)과 르노삼성자동차에 이어 기아자동차 노동조합까지 합법적인 파업권 확보를 눈앞에 두고 있다.
5일 전국금속노조 기아차지부에 따르면 중앙노동위원회는 이날 오후 2시부터 회의를 열고 노조가 제출한 쟁의조정 신청을 다루고 있다. 중노위가 더는 노사의 견해 차이를 좁힐 수 없다고 판단하면 ‘조정중지’ 결정이 내려진다.
이 경우 기아차 노조는 파업을 포함한 쟁의행위에 나설 권리를 손에 넣을 수 있다. 이미 3일 진행한 쟁의행위 찬반 투표에서 조합원 73%가 찬성표를 던지며 집행부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기아차 노조는 △기본급 월 12만304원 인상 △지난해 영업이익의 30% 성과급 지급 △전기차ㆍ수소차 전용 설비 건설 및 핵심부품 기존 공장 내 생산 △노동이사제 도입 등을 요구하며 사 측과 9차례 협상했지만,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이와 함께 노조는 사 측이 올해 3분기 실적에 세타2 엔진 결함과 관련한 품질비용을 반영한 점도 문제 삼았다.
이로써 기아차 노조는 9년 연속 파업 절차를 밟게 됐지만, 노조가 쟁의권을 확보해도 당장 파업하기보다는 교섭력을 높이는 데 집중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조 관계자도 "바로 행동에 나서는 건 아니고 쟁의대책위원회 논의를 거쳐 세부 사안을 결정할 예정"이라 밝혔다.
한국지엠 노사도 전날까지 22차례에 걸쳐 임단협 교섭을 벌였지만, 여전히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노조는 △기본급 12만304원 인상 △통상임금의 400%+600만 원 성과급 지급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미 2년 연속 임금이 동결된 만큼, 이번에는 인상이 필요하다는 견해다.
반면, 사 측은 임금 동결이 필요하다고 맞서는 중이다. 대신 현재 1년인 임금협상 주기를 2년으로 바꾸는 전제하에 성과금 명목으로 1인당 700만 원을 지급하겠다는 계획이다.
노조는 협상 주기 변경은 절대 수용할 수 없다며 추가 제시안이 없으면 쟁의행위에 나설 것을 경고한 상태다.
이미 노조는 지난달 30일과 이달 2일 전ㆍ후반조 근무자가 각각 4시간씩 부분파업을 벌였고, 잔업과 특근도 거부하고 있다. 사 측이 추가 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부분파업 연장을 고려할 것으로 보인다.
르노삼성은 차기 노조 지도부 선거가 시작돼 교섭이 잠정 중단됐다. 새로운 지도부가 구성되고 교섭에 나설 시간을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연내에 협상이 타결되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노조는 △기본급 7만1687원(4.69%) 인상 △일시금 700만 원 지급 등을 요구안에 담았고, 지난달에는 쟁의권까지 확보했다.
노조는 일단 이달 9일 치러지는 선거에 집중할 계획이다. 선거는 2파전이다.
먼저, 현재 지도부를 이끄는 박종규 위원장이 기호 1번을 달고 다시 출마했다. 박 위원장은 두 달 전 금속노조 가입과 2019년도 임단협 과정에서 파업 등 강도 높은 투쟁 전략을 펼친 인물이다.
이에 맞서는 기호 2번 김동석 후보는 중도와 실리를 내세웠다. 김 후보는 영상 홍보물을 통해 "지난 2년간 흑자에도 불구하고 기본급 인상은커녕 노동강도가 더 높아졌다"라며 "중도와 실리, 우리의 고용을 위해 소중한 한 표를 현명하게 판단해달라"고 호소했다.
한편, 현대자동차와 쌍용자동차는 큰 갈등 없이 교섭을 마무리 지으며 협력적인 노사 관계의 표본을 보여줬다.
현대차 노사는 9월에 11년 만의 임금 동결을 포함한 임단협 합의안을 마련했다. 2년 연속 무분규 타결이라는 성과도 함께 일궈냈다.
지난달 30일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이상수 금속노조 현대차 지부 위원장이 울산공장에서 직접 만나 대화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정 회장은 “최근의 노조 행보에 감사드린다”라며 노조가 파업 없이 임금 동결에 합의해준 것에 고마움을 표했다.
이 지부장은 “신임 회장에 조합원들의 기대가 크다”라며 “올해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조합원들이 노력했으니 내년 교섭에서 사기를 북돋워달라”고 말했다.
쌍용차 노사는 이보다 앞선 4월에 임금 동결 등의 내용을 담은 합의안에 서명하며 임단협을 일찍이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