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패 가려지기까지 5일 소요 -높은 투표율·우편투표 참여 감당 못한 행정력 -대선 불복 빌미 제공·지지 세력 갈등 격화
한쪽은 웃고 한쪽은 충격에 빠졌다.
7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의 승리가 확정됐다는 소식에 워싱턴D.C. 백악관 근처 도로는 흥분의 도가니였다.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은 “도널드 트럼프는 끝났다”며 환호성을 지르는가 하면, 손뼉을 치며 춤까지 췄다.
축제 분위기에 빠진 바이든 지지자들과 달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진영은 비탄에 빠졌다. 미국 중북부 노스다코타주 비스마크 주의사당 앞에서는 트럼프 지지자들이 “결과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오늘은 미국에 가장 슬픈 날”이라며 충격을 금치 못했다.
3일 치러진 이번 대선 투표는 닷새가 지나고 나서야 겨우 승패가 갈렸다. ‘세계의 대통령’이라고 불릴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자리인 만큼 세계의 시선이 쏠렸지만, 선거 시스템은 마치 후진국의 풍경을 보는 듯 했다.
선거 결과 확정이 늦어지는 사이에 두 대선 후보가 개표 과정에서 서로가 승리했다고 우기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는가 하면, 승자 확정이 지연될수록 두 후보 지지자들의 갈등도 덩달아 격화했다. 개표 지연이 패배한 대선 후보에게 불복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독 이번 미국 대선의 개표가 늦어진 이유로는 높은 투표 참여율과 우편투표 증가가 꼽힌다. 올해 미국 대선에는 1억6000만 명의 유권자가 참여, 66.8%의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이는 1900년 이후 최고 투표율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2016년 투표율이 59.2%였던 점을 고려하면, 올해 미국인들 사이에 투표 열기가 얼마나 높았는지 실감할 수 있다. 문제는 이렇게 치솟은 투표 참여율은 인력과 행정력이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는 점이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대폭 확대된 우편투표는 가뜩이나 어려운 인력과 행정력에 부담을 대폭 가중시켰다. 미국의 주 정부는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투표소의 밀집과 혼잡을 피하기 위해 우편투표를 포함한 사전투표를 더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제도 및 운용 방법 등을 변경했다. 이에 따라 올해 미국 대선에서는 사전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 수가 4년 전보다 두 배 넘게 급증했다. 전체 사전투표 수는 1억 명을 돌파했으며, 이 중 우편투표에 참여한 유권자 수는 6000만 명 이상이었다.
투표소를 찾아 직접 투표하는 방식에 비해 우편투표는 손이 더 많이 간다. 우편투표는 투표함과 용지를 개봉하고, 유권자의 투표 자격에 문제가 없는지, 등록을 마친 서명과 일치하는지 등을 일일이 확인해 표를 센다. 본인 확인을 즉석에서 끝내는 투표소에서의 현장투표보다 절차가 더 많을뿐더러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주마다 다른 우편투표 개표 규정도 개표 지연과 혼선을 부추겼다. 경합주로 주목도가 높았던 미시간과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를 포함한 10개 주는 원칙적으로 11월 3일까지 사전투표 집계를 시작할 수 없게 돼 있다. 우편투표함이 이미 도착해 있더라도 미리 표를 셀 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투표일 이후 도착한 우편투표를 유효표로 인정하는 주도 있다. 펜실베이니아 등 6개 주는 우편투표가 11월 2일 혹은 3일 소인이면 1~10일 후 도착을 허용하고 있다. 투표일 이후에 도착하는 표수가 늘어날수록 당선인 확정은 늦어질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이러한 개표 지연 속에서 이번 대선은 유례없는 혼돈 상태에 빠졌다.
먼저 1896년 이후 미국 대통령 선거 역사에서 120여 년 동안 이어져 온 패자 승복 전통이 깨져 버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성명에서 “단순한 팩트는 이번 선거가 전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며 불복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러한 불복 사태에는 개표 지연이 일정 부분 빌미를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지 세력의 결집 또한 더욱 공고해졌다. NYT에 따르면 이날 바이든 당선 확정 소식이 전해진 뒤 트럼프 지지자들은 애리조나주 피닉스, 조지아주 애틀랜타 등 각지에 모여 ‘선거 부정’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트럼프 대통령과 지지자들이 정치세력화한다면 미국 사회의 혼란은 상당 기간 계속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