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경제부 차장
이번 대선에 대해 미국 주요 언론매체들은 이구동성으로 ‘민주주의의 위기’를 우려했다. 시사주간지 뉴요커는 “이번 대선으로 미국의 민주주의가 가장 치열한 검증을 받게 됐다”며 “독재주의적 성향이며 크고 광신적인 지지 기반을 갖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평화롭게 물러날지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CNN도 “미국 대선이 민주주의와 절망적으로 이혼하는 드라마가 됐다”며 “미국 선거 절차의 복잡성과 분권화가 시민에게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또 소셜미디어는 협박과 가짜뉴스 확산이 침입하는 채널이 됐다”고 오늘날 민주주의 위기를 규명했다. 그러면서 “TV방송과 소셜미디어로 가득 찬 미국의 선거는 대중이 의지를 반영하는 대신 특정 배우에 의해 조작되는 게임이 됐다”며 “시민이 자신들을 가장 잘 대표하는 사람을 적극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열렬한 관중이 돼 버렸다”고 한탄했다.
인권과 민주주의 수호국을 자처했던 미국에서 민주주의 시스템을 구성하는 핵심 원칙인 선거 결과에 대한 승복과 평화로운 정권 이양이 불투명해진 현 상황이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이런 우려와 한탄은 진부하기만 하다. 이제 더는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을 비난하고 욕하면서 민주주의가 잘못된 원인을 전부 돌리기보다는 진정한 해법을 모색해야 할 때다.
사실 그동안 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우려가 제기될 때마다 트럼프는 항상 좋은 핑곗거리였다. 절차와 원칙을 무시하고 사람들을 선동하는 그의 발언은 의심할 여지 없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한 사람에 의해 미국 민주주의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면 그 또한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이제 민주주의가 시험대에 올랐다며 걱정하고 징징거리기보다는 다시 건전하게 시스템을 돌리기 위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행동에 나서야 할 때다.
먼저 기성 정치인부터 바뀌어야 한다. 워싱턴D.C.에서 수십 년간 의원직을 하면서 잔뼈가 굵은 정치인들이 유명 기업인이자 리얼리티쇼 스타로 명성을 날렸지만 정치에는 문외한이었던 트럼프에게 맥을 못 춘 것을 반성해야 한다. 정책의 옳고 그름을 떠나 선거공약 이행 면에서 트럼프가 역대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 것은 정치인들이 본받아야 할 점이다. 트럼프는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나 중국과의 무역전쟁, 감세 등 자신이 말했던 것은 어김없이 지켰다. 그동안 정치인의 거짓말에 식상했던 많은 시민이 트럼프의 이런 면에 혹했을 수 있다.
언론들도 철저한 성찰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땅에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다. 소셜미디어와 유튜브에 나온 가짜뉴스들을 사람들이 그토록 믿는 것에 대해 대중의 우매함을 탓하기보다는 우리가 정말 신뢰할 만한 기사를 썼는지 되새겨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모든 사회 구성원 자체가 의사소통의 방식에서 변화를 꾀했으면 한다. 좌파든 우파든 서로 생각이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대립과 분열보다는 이해와 조화의 길을 찾아야 한다. baejh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