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에 데인 손정의, 이젠 '유니콘' 대신 '공룡'만 본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상장주 투자로 전략을 수정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앞으로 우리는 정보혁명에 투자하는 회사가 될 것이다."

스타트업 사냥꾼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SBG) 회장이 전열을 다시 가다듬고 있다. 인공지능(AI) 관련 유니콘에 집중한다는 기존 투자 전략을 접고, 앞으로는 상장 여부에 관계없이 다양한 투자처에 자금을 투입하는 종합적인 투자회사로 거듭난다는 복안이다.

9일(현지시간)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손 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소프트뱅크그룹의 나아갈 방향과 존재의 의미에 대해 밝혔다.

그는 "9월 말 시점에 SBG는 미국 IT 관련 상장주 2조1000억 엔(약 22조3000억 원) 어치를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 이는 그동안 비상장 유니콘 투자에 집중해온 SBG가 투자 전략을 크게 선회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는 평가다.

3월 이후 4조5000억 엔 규모의 자산 매각 방침에 따라 SBG는 통신 자회사 소프트뱅크 등의 일부 지분을 매각했고, 9월에는 영국 반도체 설계업체 ARM홀딩스를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에 매각키로 합의했다. 사업을 하는 자회사를 줄이는 대신 기업에 지분 투자하는 투자회사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투자 사업을 담당해온 10조 엔 규모의 '소프트뱅크 비전펀드(SVF)'의 투자처는 유니콘이라는 비상장사로, AI 등을 다루는 스타트업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가 7월부터는 포트폴리오에 아마존닷컴과 페이스북 줌, 알파벳, 넷플릭스, 어도비, 마이크로소프트(MS), TSMC, 페이팔, 세일스포스 등 미국 대형 IT 종목들을 공격적으로 주워담았다. 40억 달러 어치의 기술주 콜옵션을 사들여 ‘나스닥 고래(Nasdaq Whale)’ 역할을 했다는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에 대해 손 회장은 "사람들은 우리가 나스닥 고래라고 하지만, 파생상품은 우리 포트폴리오의 1%도 안 된다"고 설명했다.

SBG는 앞으로도 유니콘에 대한 투자는 계속하지만, 보유 주식에서 차지하는 유니콘 비율을 10%대로 제한할 방침이다. 현재는 8%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투자 전략 선회 의지는 이날 인사를 통해서도 분명히 드러났다. 라지브 미스라 비전펀드 최고경영자(CEO)와 마르셀로 클라우레 최고운영책임자(COO), 사고 가쓰노리 최고전략책임자(CSO)를 이사회에서 퇴출한 것이다. 이날 인사에 대해 파이낸셜타임스(FT)는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라는 투자자들의 압력에 따른 것"이라고 전했다. 앞서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올 2월, 25억 달러의 지분을 갖고 있는 손 회장에게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고, 투자자들에게 환원해줄 것으로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