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진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농업연구관…"품종 개발부터 등록까지 20년"
“1998년 국산 사과 품종 ‘홍로’가 처음으로 개발됐고, 지금은 외국 품종들을 대신해 최고의 추석 사과로 자리 잡았습니다. 국산 품종 개발도 할 수 있다는 신호탄이 됐죠.”
‘사과 박사’로 통하는 권순일<사진>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농업연구관과 18일 이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1993년 농업연구사로 처음 사과연구소에 발령받은 뒤 27년간 사과에만 매달렸다.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사과는 품종 개발에만 20년 이상이 걸렸다.
권 연구관은 “새로운 품종 개발을 시작해 품종을 등록하기까지 20년이 걸린다고 보면 된다”며 “오랜 기간이 걸리는 과정이기 때문에 개발자가 초심을 잃지 않고 정밀하게 조사하고 선발해야 좋은 품종을 선보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농진청이 개발한 국산 품종은 모두 37개. 외래 품종을 도입해 국내 현실에 맞게 새롭게 육성했다. 첫 국산 홍로도 익는 시기를 우리 명절인 추석에 맞춰 개발한 것이다. 그는 “홍로 이전에는 스타킹, 골든딜리셔스, 세계일, 홍월 같은 외국 품종이 우리 사과 시장을 모두 선점하고 있었다”며 “홍로가 개발되고 나서 빨갛게 색이 잘 들고 맛도 좋은 사과를 차례상에 올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앞으로 품종 개발도 이 같은 생산과 소비 환경에 맞게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 권 연구관의 설명이다. 특히 최근에는 변화의 폭이 더욱 커졌다.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소포장이나 작은 과일을 찾는 소비자들이 많아졌고, 농촌 인구가 감소하면서 노동력이 적게 들어가는 품종도 필요하다. 또 기온이 상승하면서 재배지가 변하는 것도 신품종 개발에서 고려해야 한다. 그는 “품종 개발에 있어 소비와 인구, 기온 변화와 더불어 국가 간 품종 개발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맛과 저장성 등 우수한 품질을 기본으로 갖춘 다양한 품종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품종을 폭넓게 보급하는 것도 품종 개발 이후 공을 들여야 하는 부분이다. 신품종을 개발했다고 해서 농가들이 쉽게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특히 사과는 한번 시작하면 재배 기간이 길어 대체가 쉽지 않고, 또 인지도가 높지 않으면 그만큼 수익성도 낮아지기 때문이다.
권 연구관은 “사과나무는 한번 심으면 짧게는 15년, 길게는 50년 이상도 재배할 수 있어 농가에서는 경제적 수령이 다 한 뒤에 교체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며 “여기에 시장 인지도가 낮으면 ‘잡사과’로 평가절하돼 가격이 낮게 책정되고, 몇 년이 지나면 농가가 새 품종을 베어내려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농진청은 새 품종을 생산하는 농가의 물량만 모아 유통으로 연결해주는 공동출하를 지원하고 있다. ‘생산자-품목협동조합-대형청과’를 연계하면서 시장 인지도가 낮은 신품종 과일의 가치를 높여 농가 소득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품종 개발을 위한 지원은 여전히 아쉬운 상황이다. 그는 “연구 개발 과정에서 한 품종의 특성을 정확히 파악하기까지는 적어도 5년 이상 관찰을 해야 하고, 1년에 한 지역만 관찰할 수 있어 여러 지역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수년 이상이 걸린다”며 “그만큼 새 품종 보급이 더뎌질 수밖에 없고, 이를 지원해줄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사과 박사인 그의 생각은 확고하다. 품종 개발에 대한 지원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위한 품종 개발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권 연구관은 “사과 품종은 철저히 수요자 입장에서 평가해야 하고, 개발된 품종은 문제가 있으면 극복 가능한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영업사원이 돼야 한다”며 “90점짜리 품종도 10점을 채우지 못하면 실패한 품종이 되고, 10점짜리 품종도 90점을 보완하면 성공한 품종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