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단)이 담배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라며 담배 제조·판매사인 KT&G, 한국필립모리스, 브리티쉬아메리칸 토바코 코리아 등을 상대로 낸 500억 원대 손해배상 1심 소송에서 6년 만에 패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 22부(재판장 홍기찬 부장판사)는 20일 건보단이 '담배의 결함과 불법 행위로 발생한 손해를 배상하라'며 담배 회사 등을 상대로 낸 손배소를 기각 판결했다.
건보단은 3465명이 담배 때문에 폐암·후두암 등에 걸려 보험급여(공단부담금) 533억여 원을 지출했다며 2014년 9월 이 소를 제기했다. 배상액은 2003년부터 2013년까지 건보단이 암에 걸린 환자 중 30년 이상 흡연했고, 20년간 하루 한 갑 이상 흡연한 환자들의 진료비 중 자신들이 부담한 금액다.
쟁점은 건보단이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가 있는지와 담배회사가 담배를 만드는 데 있어 설계상ㆍ표시상 결함 등 불법행위가 인정 여부였다.
재판부는 "건보단이 보험급여 비용을 지출해 재산상 불이익을 얻었더라도, 이는 설립 당시부터 국민건강보험법이 예정하고 있는 사항으로서 감수해야 하는 불이익에 해당한다"며 "이런 지출이 담배회사들의 위법행위로 인해 발생했다기보다는 '보험관계'에 따라 지출된 것에 불과해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담배회사의 불법행위도 인정하지 않았다. 담뱃잎을 태워 그 연기를 흡입하는 것은 본질적 특성이기 때문에 설계상 결함이 있다고 볼 수 없고, 담뱃갑에 유해성에 대해 적어놓고 언론보도 역시 많이 있으므로 표시상 결함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담배회사들이 폐암과 후두암에 걸린 이들에 대해 기망행위를 하거나, 중독성을 축소은페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도 부연했다.
건보단이 흡연으로 인해 특정 질병이 발생했다는 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을 다하지도 못했다고 봤다. 건보단이 제시한 3465명의 사례는 단순히 이들이 20년 이상 흡연력을 가지고 있고, 해당 질병에 걸렸다는 사실 등만 알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여러 연구결과 등이 시사하는 것처럼 역학적 인과관계가 인정될 수 있더라도, 그 자체로 인과관계를 인정할 만한 개연성이 증명됐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한편, 미국에서는 1999년 담배회사들이 중독성을 강화하기 위해 각종 첨가물을 넣거나 소비자에게 충분히 경고하지 않았다며 46개 주 정부가 집단 소송을 제기했고, 2060억 달러(약 228조 원)의 합의금을 받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