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에서 '월세'를 걷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은퇴 후 소득도 없는데 집을 팔아서 세금을 내야 할 상황입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K모 씨.)
"집값이 계속 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당장 현금이 급한 것도 아니고, 일단 보유 후 아들에게 증여를 할 지 여부를 결정할 것입니다. " (서울 강남구 대치동 L모 씨.)
종합부동산세(종부세) 고지서 폭탄을 받아든 고가 아파트 보유자들과 다주택자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작년보다 2배 안팎으로 오른 세금 부담에 납세 전략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것이다. 세금 부담에 매도를 고민하는 보유자들도 있지만 아직은 증여 등 추가 대응을 고려해보자는 움직임이 많다. 올해 말부터 절세 매물 출회로 매매시장이 안정될 것이란 정부의 기대와 달리 내년 중순까지는 매물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서초구 반포동 반포자이 전용면적 84㎡형을 보유한 경우 올해 350만 원 가량의 종부세가 부과된다. 이는 작년 종부세 191만 원 보다 2배 가까이 오른 금액이다. 이 아파트의 내년 종부세 예상액은 713만7000원으로 올해보다 2배 넘게 오르게 된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 84.4㎡형과 마포구 아현동 래미안푸르지오 전용 84㎡형을 보유한 2주택자의 세금 인상 폭은 더 가파르다. 이 경우 올해 종부세 부과액은 1857만 원이나 내년 4932만원으로 2.7배 오를 전망이다. 종부세에 재산세 등을 합한 보유세의 경우 올해 총 2967만 원에서 내년에는 6811만 원으로 급증한다.
이처럼 세금 부담이 커지자 주택 보유자들은 혼란스런 모습이다. 주요 인터넷 포털에서는 종부세 부과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벌써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종부세, 퇴직한 사람은 거주의 자유도 없습니까" 는 글이 올라왔다. 이 글의 게시자는 "퇴직한 사람은 거주의 자유도 없습니까"라고 반문하며 "몇 년 전에 아파트 가격이 몇 억 빠졌을 때 국가에서 보전해주지 않았다. 적당히 세금 부과해야 한다"고 물었다. 이 게시글은 올라온 지 하루만에 동의자가 1000명을 넘어서고 있다.
시장의 반발은 크지만 정부는 세금 부담에 따른 매물이 출회하면서 서울 집값이 진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그간 서울 아파트값 상승을 주도했던 강남 일부 단지에서 호가(집주인이 부르는 가격)를 낮춘 매물이 나타나고 있다. 매물도 많아졌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아파트 실거래가)에 따르면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의 아파트 매물 증가량은 서울 전체 구 가운데 1∼3위를 차지했다. 서초구가 같은 기간 아파트 매물이 3367건에서 4292건으로 27.4% 늘었다. 강남구도 3557건에서 4289건으로 20.5% 늘었고 송파구는 전년 대비 20.1% 증가한 2908건를 기록했다.
실제 거래된 사례를 살펴보면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전용 84㎡형은 지난달 30일 36억6000만 원(13층)에 신고가 거래 후 이달 5일 34억5000만 원(20층)에 계약서를 썼다. 불과 일주일 만에 2억1000만 원이 내렸다.
압구정동 신현대11차 183㎡형은 지난달 24일 46억4000만 원(13층) 신고가로 거래된 뒤 이달 4일 42억 원(2층)에 매매됐다. 현재 호가는 42억 원 수준이다.
하지만 이를 집값 안정 신호로 보기는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진단이다. 서초구 대치동 K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급매물이 일부 나오고 있지만 절세 매물 등으로 가격 하락이 실제로 나타나는 상황은 아니다"면서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워낙 크기 때문에 일단 집을 갖고 있다가 증여나 매도를 고려하겠다는 집주인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올해 연말보다는 내년 6월 조정대상지역 내 양도소득세 중과 시행을 앞두고 내년 상반기 안에 다주택자들이 집을 처분하려 움직일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곽창석 도시와공간 대표는 "세 부담에 주택 처분을 고민하는 분들이 늘어나면 가격도 일정부분 조정을 받을 가능성은 있다"면서도 "실제 매도 물량이 물량이 많지 않아 집값 하락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