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대 교수, 전 한국세무학회장
국세청은 작년에 빅데이터센터를 설립했다. 올해도 데이터·네트워크·인공지능(AI) 등 이른바 ‘D·N·A’ 역량을 기반으로 비대면 세무서비스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그동안 납세자는 세금의 신고·납부 또는 불복 과정에서 국세청의 자료를 거의 활용하지 못해 왔다. 이런 이유로 국세청의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구축은 납세자를 위한 것보다는 조세징수의 편의를 위하여 과세권자 중심에서 추진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그러나 정보기술의 발전과 이를 활용한 조세행정의 변화가 피할 수 없는 추세라는 점에서, 향후 과세권자와 납세자에게 모두 유익한 균형 잡힌 정책 추진이 요구된다. 미국도 정보기술 및 온라인 서비스 부서 등을 별도로 두어 정보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각종 조세행정을 선진화하고 있다.
국세청은 국민의 개인정보를 가장 많이 가진 기관이다. 개인 신상은 물론이고 가족의 개인정보뿐만 아니라, 각종 수입과 지출의 세밀한 내용까지도 보유하고 있다. 국민의 하루하루 일상이 국세청의 슈퍼컴퓨터에 들어가고 있다. 이런 정보를 과세권자인 국세청에만 유리하게 이용할 목적으로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활용한다면 새로운 차원의 부작용만 야기될 수 있다. 따라서 이를 납세자에게도 제공함으로써 세금 신고를 비롯하여 조세불복 절차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국세청의 정보관리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해소하기 위한 감시기구 설치 등도 요구된다.
국세청은 지금까지 국세정보의 공개를 극히 꺼려 왔으며 허용하더라도 매우 제한적이었다. 법령 등 제도에서도 많은 제약을 두고 있었다. 연구 등 공익 목적인 경우 종전보다 수월하게 국세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이 이뤄지긴 하였지만 아직도 쉽지 않다. 연구기관이나 대학 등이 국세정보를 활용할 때는 사전에 국세청과 협약을 맺어야 가능하다. 일반 기업이나 국민이 국세청이 매년 제공하는 국세통계연보 이외에 개별적으로 국세정보를 활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보기술 시대의 조세행정은 납세자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과세권자는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를 세금의 부과징수 및 탈세 방지 등에만 활용해서는 안 된다. 납세자는 국가의 주권자이면서 헌법에 의거 태생적으로 납세의무가 주어지지만, 현대사회에서 세금은 매우 복잡하고 난해하여 납세자 스스로 세금을 신고·납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납세자는 세금을 신고하고 납부하고 불복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납세협력비를 부담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또 다른 세금이라는 점에서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이미 법률서비스 시장에서 민사 및 형사소송의 소장을 미리 작성해 보거나 형량도 예측해 보는 등 인공지능을 활용한 각종 서비스가 등장했다. 세금신고는 납세의무의 일환으로 수행된다는 점에서, 인공지능 및 빅데이터 활용 등을 민간시장에 의존시켜 납세협력비를 늘려서는 안 된다.
인공지능 및 빅데이터를 통한 조세행정의 혁신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과세권자보다 납세자의 관점에서 납세자 권익을 증진시켜야 한다. 납세자가 자신과 관련한 정보를 국가가 제공하는 인공지능 및 빅데이터를 통해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세금의 신고·납부뿐만 아니라 불복에도 활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과세권자, 납세자 및 세무대리인에게 모두 도움이 되는 조세행정이 요구된다.
#홍기용 칼럼 #국세통계 #납세자 #세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