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경 국제경제부장
캐퍼닉으로 말할 것 같으면, 2016년 경기 전 국가(國歌)가 흐를 때 공권력의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무릎 꿇기를 주도했다가 논란이 된 인물. 당시 그의 무릎 꿇기를 지지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국가와 스포츠에 대한 모독이라며 비판하는 목소리가 더 컸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보수파의 심기를 자극, 온라인에서 나이키 제품을 불태우는 영상이 쏟아졌고 불매운동까지 번졌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미국프로풋볼리그(NFL)는 무릎 꿇기 시위를 금지했고, 캐퍼닉은 조기 계약 만료로 팀에서 쫓겨났다.
그러나 그 후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나이키에 대한 비난이 거세질수록 팬이 늘어나 결과적으로 브랜드 이미지에 엄청난 ‘플러스’ 효과를 본 것이다.
그때 진짜 재미를 본 것일까. 나이키가 또 일을 벌였다. 이번엔 일본에서다. 지난달 28일 나이키 재팬이 유튜브에 공개한 나이키 광고는 일주일도 안 돼 조회 수가 1000만 회를 돌파했고, 댓글은 무려 6만 개에 육박했다.
이번 광고 역시 2년 전처럼 애국심에 불타는 일본 보수파를 자극했다. ‘계속 움직인다. 자신을, 미래를’이라는 제목의 광고에는 3명의 축구 소녀가 등장한다. 한 명은 학교에서 집단 괴롭힘을 당하고, 다른 한 명은 이른바 자이니치(재일 한국인), 나머지 한 명은 아프리카계 아버지를 둬 피부색이 검다. 이들 소외된 소녀가 축구를 통해 고민과 갈등을 극복하고 자신의 미래를 바꾼다는 내용이다.
일본인들이 폭발한 건 이 광고가 일본 사회에 집단 괴롭힘이나 차별이 많다는 오해를 해외에서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다. 옷깃만 스쳐도 연신 고개를 굽신거리며 ‘스미마센(미안합니다)’을 반복하는, 세상 도덕적이고 예의 바른 일본인이 그런 비윤리적인 행위를 할 리 없다는, ‘일본인은 숭고하다’는 사관에 반한다는 것이다. 이 광고에 대해서는 ‘좋아요’가 8만5000개, ‘싫어요’가 5만5000개 등 호불호가 팽팽하다. 일단 나이키의 목적은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인권 문제를 꼬집은 나이키의 이번 광고는 치밀하게 계산된 마케팅 전략일 수 있지만, 틀린 얘기도 아니다. 가장 가까운 예를 들자면, 작년 초 일본 라면회사 닛신은 2018년 US오픈 테니스대회 여자 단식에서 우승컵을 거머쥔 테니스 스타 오사카 나오미를 모델로 한 애니메이션 광고로 파문을 일으켰다. 오사카는 일본인 어머니와 아이티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흑인 혼혈인데, 애니메이션에서는 그녀를 하얀 피부와 갈색 머리 등 백인처럼 묘사, 이른바 ‘화이트 워싱’을 해버린 것이다.
정부 조사 결과도 있다. 2017년 일본 법무성 조사에 따르면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취업을 거절당한 사람은 25%, 입주를 거절당한 사람은 40%였다. 또 올해 3월 문부과학성 조사에서는 일본에 있는 외국인 자녀 약 2만 명이 학교에 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언어 문제도 있지만, 인종 차별에 따른 왕따가 원인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문부과학성이 발표한 ‘학교 가지 않는 이유 조사’에 따르면 2019년 전국 초중고교의 왕따 건수는 전년보다 6만8563건 많은 61만2496건에 달했다.
재일 한국인, 이른바 자이니치 3세들은 성인이 되면서 정체성에 큰 혼란을 겪는다. 선천적 이중국적자는 일본 국적법에 따라 만 22세 생일 이전에 국적을 선택해야 하는데, 귀화한다면 자신이 자이니치라는 사실을 평생 숨겨야 하고, 한국인으로 남는다면 여생을 차별을 감수하며 살아야 한다. 이런 사회적 약자들에게 나이키 같은 힘 있는 기업의 광고는 고마운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나이키도 상대를 봐 가면서 시비를 거는 것 같다. 얼마 전 뉴욕타임스(NYT)는 나이키, 코카콜라 같은 미국 대기업들이 인권 탄압이 심각한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의 강제 노동을 막기 위해 미국 의회가 심의 중인 법안에 반대하는 로비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재 나이키 재팬의 유튜브 광고 댓글에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의 인권 탄압을 다룬 광고의 중국판도 내놓으라고 아우성이다. 인구 14억 명, 세계 최대 소비시장 중국의 인권탄압에 맞설 용기가 있는가. 나이키의 진짜 용기를 시험할 때다. “Just do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