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의 비토권(거부권) 행사로 출범기일(7월 15일) 다섯 달 가까이 지나고도 출범하지 못했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가 관련 개정안 국회 상임위 통과로 연내 출범이 가시화됐다. 국민의힘의 반발에도 더불어민주당은 8일 속전속결로 법안소위 안건조정위와 전체회의를 진행한 가운데, 공수처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여야 법사위원 간 고성이 오가는 등 아수라장 속에서 윤호중 법사위원장이 기립 표결을 통해 법안을 처리했다.
11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오전 안건조정위에서 의결한 공수처법 개정안(김용민 의원 대표발의안이 주로 반영)을 민주당 단독으로 강행 처리했다.
윤호중 법사위원장은 국민의힘 의원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토론을 진행할 상황이 아니므로 토론을 종결하겠다”며 토론 없이 안건을 표결에 부쳤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법사위원 11명과 열린민주당 최강욱 의원이 기립해 찬성 의사 표시를 했다.
야당 의원들은 “지금 무엇 하는 거냐, 부끄러운 줄 알라”고 따지고, 의사봉을 두드리지 못하도록 막았다. 윤 위원장은 의사봉 대신 손바닥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공수처법 의결을 선언했다. 전체회의 개의 후 10분 만에 절차가 마무리됐다.
안건조정위원회 심의 중 국민의힘 의원들은 회의실 앞에 다닥다닥 몰려 “공수처법 철회하라”, “민주주의 유린하는 공수처법 철회하라” “날치기 시도 중단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공수처법의 존치가 권력분립의 원리를 해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여전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우리는 지금 선출된 권력이 어떻게 삼권분립 헌법정신 훼손하고 권력 농단하고 있는지 똑똑히 목도하고 있다”며 “지난 총선에서 국민이 민주당에 180석 가까운 의석 몰아준 건 집권당의 입법독재에 면죄부를 준 건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공수처법 개정안을 비롯한 권력기관 개혁 입법과 관련해 “우리 당은 국정원법, 검찰법에 이어 오늘은 공수처법 개정안도 소관 상임위에서 처리했다”며 “개혁의 과업이란 것은 대단히 고민스럽지만 또한 영광스러운 일이다. 기꺼이 그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법이 본회의까지 통과되면 권력기관 개혁 입법은 일단락된다”며 “이제 우리는 권력기관 개혁의 제도화를 이루고 그다음 발전 단계를 지향해 가야 한다. 동시에 코로나 극복, 민생 안정, 경제 회복, 미래 준비 쪽으로 중점을 서서히 옮겨갈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9일 열리는 본회의에서 공수처법 개정안에 대한 무제한 토론, 필리버스터를 통해 표결 시도를 막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민주당은 다음날인 10일 오후 임시국회를 소집한 만큼 법안은 이날 본회의에 자동 상정돼 처리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법상 필리버스터 안건은 다음 회기 본회의에 자동 상정돼 표결에 부쳐 10일 임시국회가 열리면 민주당은 다수 의석을 바탕으로 공수처법을 의결할 수 있다.
민주당은 야당의 필리버스터 카드에 대해 “국회를 퇴행시키고 있다”며 맞섰다. 민주당 박성준 원내대변인은 “공수처 출범이 목전에 다가왔지만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를 예고하며 또다시 발목을 잡고 있다”며 “필리버스터를 무기 삼아 국회를 다시 퇴행으로 이끌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공수처 출범이 헌정사 오점이라고 했지만 지금 권력기관을 개혁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그것이 헌정사의 오점으로 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아무리 발목을 잡아도 공수처는 출범한다”며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비토크라시(상대 정당의 정책을 모두 거부하는 파당 정치)로 공수처를 막아선다면 민주당은 민주주의로써 공수처를 반드시 출범시킬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