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방역 민간병원이 나서야 할 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2018년 한국의 인구 1000명당 병상 수는 12.4개로 회원국 평균(4.5개)의 2.8배다. 또 대한의사협회는 한국의 의사 부족이 왜곡된 의료전달체계에 기인한 문제일 뿐, 절대적으로 의사가 부족한 건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됐을까.
첫째, 민간의료기관의 풍부한 인프라가 코로나19 대응에 활용되지 않고 있다. OECD 회원국 중 인구 1000명당 병상 수가 우리보다 많은 국가는 일본(13.0개)뿐이다. 이처럼 병상이 많지만, 확진자의 80%가량은 전체 병상의 약 10%에 불과한 공공의료기관에 입원해 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8일 성명서에서 “90%를 차지하는 민간병원의 병상이 버젓이 있는데, 왜 벌써부터 불완전한 의료자원인 컨테이너박스와 체육관에서 코로나19 치료를 받아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둘째, 의사 부족은 명분이 아닌 현실이다. 우리나라 병상은 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많지만, 인구 1000명당 임상의사(한의사 포함)는 2.4명으로 회원국 평균(3.5명)의 3분의 2 정도다. 의사 수 부족에 더해 의사들의 공공의료기관 기피도 심각하다. 신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월 공개한 34개 지방의료원 인력현황을 보면, 서울·인천·남원·진안·강진·목포·제주 7개 의료원은 의사 충원율이 80%를 밑돌았고, 의정부·강진·진안·안동 등 4개 의료원은 의사 이직률이 40%를 웃돌았다. 지방으로 갈수록 의사의 보수는 높아지지만, 충원율은 낮아지는 아이러니다.
이런 상황들을 고려하면, 단기적으론 민간의료기관의 병상을 확진자 치료에 활용하고, 중장기적으론 감염병 전담병원 등 공공의료기관을 확충하면서 의료인력 공급을 늘려야 한다.
하지만 어느 무엇도 제대로 안 되고 있다. 병원들은 수익에 민감하다. 전파력이 높은 코로나19의 특성상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려면 일반 환자를 일부 포기해야 한다. 이는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피부과·성형외과 등 특정 진료과목 전문의 쏠림, 분만 등 특정 의료행위 기피 등도 결국은 수익성 문제다. 올해 초 이국종 아주대학교의료원 외상연구소장과 아주대학교병원 간 갈등이 의료 공공성과 병원 수익성이 대립했던 대표적인 사례다.
공공의료기관 확충도 마찬가지다. 봉직의보다 개원의를 선호하는 풍토에서 의사 공급을 유지하면서 공공의료 인력을 확보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정부의 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원(공공의대) 설립, 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반발해 대한의사협회는 총파업을 단행하고, 전공의들은 진료를 거부하고, 의대생들은 의사 국가시험을 거부했다. 이런 상황에 의협은 11일 정부에 △코로나19 전용병원 확충 △환자 관리체계 변경 등을 촉구했다. 병상을 틀어쥐고 의사 확충에 반대하면서 전용병원을 지정하고 환자 관리체계를 변경하란 건 무의미한 존재감 과시다.
코로나19 사태와 무관하게 의협 등 의료계는 늘 같은 메시지를 내놨다. ‘돈 되는 진료는 민간에서 할 테니, 돈 안 되는 진료는 공공에서 책임져라’, ‘민간의 협조를 바란다면 우리가 체감하기에 충분한 보상과 혜택을 내놓아라’, ‘의사 공급을 늘리면 경쟁이 치열해지니, 의사 확충을 배제하고 대안을 찾아라’,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그렇다고 정부가 모든 걸 잘한 건 아니다. 공공의료 확충을 내세우면서도 내년도 예산안에 공공의료기관 확충을 위한 예산은 반영하지 않았다. ‘젊은 의사들이 기피하는’ 공공의료기관의 열악한 근무환경도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는 보건의료 위기의 단면이다. 앞으로 유사한 신종 감염병이 또 등장할 수 있고, 고질적 의료격차도 계속될 것이다. 따라서 제대로 된 대응과 준비가 필요하다. 정부는 ‘질 좋은’ 공공의료기관을 확충하되 기존 공공의료기관에 대해선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경기도가 13일 수원의 경기대학교 기숙사 1000실 중 500실을 병상과 생활치료시설로 활용하기 위해 긴급동원조치를 내린 것도 방법이다. 민간은 단기적인 병상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코로나19 환자 치료에 동참하되 장기적으론 의료 국민건강 증진을 최상위 가치로 두고 정부와 협상에 임해야 할 것이다. K-방역은 단순히 코로나19 확진자 수를 관리하는 게 아니다. 보건의료 전반의 위기를 제대로 극복해야 비로소 K-방역을 자랑스럽게 해외에 알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