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기업과의 기술계약이 기약없이 미뤄지고 있습니다. 시기가 너무 안 좋아 안타깝습니다.” 기술특례로 상장한 B사는 상장 초기만 해도 벤처캐피털 서너 곳에서 러브콜을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이들의 목숨줄과 같은 벤처캐피털업계에서 시드, 시리즈A 등 초기 단계 투자에 더 신중해졌기 때문이다. B사 관계자는 “수년간 개발한 기술이 이제야 빛을 보나 했는데 아쉬울 따름입니다. 코로나19 사태가 계속되면 증시에서 쫓겨날 수도 있습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기술특례 적자대란’이 업계를 강타하고 있다. 내년에도 적자가 지속되면 코스닥시장에서 짐을 싸야 하는 상장사만 6곳이다. 1조 4000억 원의 시가총액이 증발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관련 주주만 수십만 명에 이른다. 자칫 코스닥 기업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퍼펙트 스톰’을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분식회계, 자본 먹튀 기업에겐 엄격한 잣대를 작용해야 하지만, 애플이나 테슬라와 같은 기업을 만들려면 ‘특례상장’의 범위를 더 넓혀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주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핀셋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상장 문턱 낮아지며 진입 늘었지만...신뢰도는 ‘글쎄’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현재 기술특례 상장제도를 이용해 증시에 입성한 기업은 106개에 달한다.
문제는 적자투성이 기술특례 상장기업들의 관리종목 지정 여부 시기가 도래한다는 점이다. 2015년 상장 활성화 추진 후 6년 차에 접어들면서 연속 적자기업에 빨간 불이 켜진 셈이다. 기술특례상장 기업은 매출액 30억 원 미만이면 6년째부터, 자기자본 50% 이상 잠식과 영업손실이 7년째 이어지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된다. 이와 달리 일반 코스닥 상장사는 4년 연속 적자를 내면 관리종목에 지정되고 5년째에도 이어지면 상장폐지 실질심사로 이어진다.
2015년 상장 후 올해 사업연도까지 매출액 30억 원 미만이 이어졌을 경우, 관리종목으로 지정될 수 있다. 2015년 기술특례로 상장한 12곳 중 해당하는 회사는 없다.
2015년 상장 후 올해 사업연도까지 적자를 기록한 기술특례 상장기업은 6개로 집계됐다. 펩트론, 에이티젠, 유앤아이, 아이진, 맥아이씨에스, 강스템바이오텍 등이 2015년부터 5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코아스템은 4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내년에도 적자를 기록하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된다. 관리종목 지정되면 일정 기간 주식거래가 정지되고, 해당 사유가 반복되면 상장 폐지될 수 있다.
올해 3분기까지 적자가 이어진 기업은 관리종목 지정을 우려해 서둘러 자본확충에 나서기도 한다. 올해 특례조건이 만료되는 펩트론은 유상증자를 실시해 관리종목 지정을 피할 요령이다. 지난 10월 434억 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는데, 자본 확충이 이뤄지면 적자 지속에도 관리종목 편입에서 벗어날 수 있다. 회사 측은 “올해 3분기 기준 자기자본 148억, 법인세비용차감전계속사업손실 135억 원을 기록해 이번 유상증자로 자본확충이 이뤄지지 않으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펩트론, 신라젠, 헬릭스미스 등 기술특례 상장기업의 관리 부족 실태가 이어지면서 시장 전체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트릴 수 있다는 지적을 제기한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기술특례상장 등으로 실적 없는 업체 비중이 커지면 코스닥 시장의 장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며 “시장 밸류에이션이 높아진 만큼 해당 기업에 투자한 투자자들을 위한 보호 방안도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한국판 테슬라는 언제쯤=‘1223년.’ 14일(현지시각) 현재 시가총액이 6064억 달러(약 663조 원)인 미국 전기차 회사 테슬라를 이 회사의 순이익(지난해 기준)을 모아 인수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이는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전통적인 지표인 ‘주가수익비율(PER)’이 1223배라는 뜻이다. 통상 PER가 12배보다 높으면 고평가된 기업으로 본다. 증권가에서는 PER가 1155배인 테슬라는 전통방식 가치 평가로 인식할 수 없는 ‘안드로메다 기업’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그러나 시장은 아직 싸다고 말한다. 골드만삭스가 테슬라의 목표 주가를 780달러로 대거 상향 조정했다.
테슬라뿐 아니다. 세계 1위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의 PER는 92.30배다. 페이스북(31.24배), 넷플릭스(84.37배) 등도 모두 고평가 기업으로 꼽힌다.
애플, 테슬라, 알리바바, 다이슨, 아마존, 구글, 넷플릭스 등은 남들보다 먼저 미래를 점치는 데 성공해 세상을 바꾼 기업들이다. 흔히 ‘이노베이터’라고도 한다. 전기자동차 모델3 등을 선보이며 시장의 법칙을 바꾼 테슬라의 엘론 머스크, 애플을 미국의 시가총액 1위 기업으로 키워낸 스티브 잡스도 있다.
테슬라가 전기차 사업에 야심 차게 뛰어들 때만 해도 업계에선 “몇 년 버티기 힘들 것”이란 비아냥이 많았다. 하지만 테슬라는 우여곡절 끝에 2008년 첫 모델을 선보였다. 최초 모델명은 ‘로드스터’. 순간 가속 능력에서 로드스터를 능가하는 차량은 포르쉐 911 터보, 람보르기니, 페라리 등 손에 꼽힐 정도였다. 시장에서는 ‘도대체 어떤 회사냐’며 관심을 보였고, 로드스터는 억대 가격에도 소비자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덕분에 엘론 머스크는 토요타, 파나소닉 등 글로벌 기업 투자를 받았고 2010년 6월 테슬라를 나스닥에 상장했다.
왜 우리에겐 이런 기업이 없을까. 과도한 규제 탓도 있지만, 시장과 기업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진 탓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그 배경에는 금융당국과 거래소의 무능이 자리하고 있다. 제도적 허점도 지적한다. 이명선 신영증권 연구원은 “벤처 활성화 등을 위한 기술특례상장 등이 제도화되고 투자금이 모였을 때 투자리스크에 대한 부분도 충분히 고지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해외는 자율 규약으로 특례상장 기업을 선별, 감시하고 있다”며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의 책임 있는 자세를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