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대비하는 4대 그룹…미래사업 준비 ‘전력’
올 한 해 녹록지 않은 경영 상황 속에서 국내 기업들은 과감한 투자를 통한 위기 극복 의지를 다졌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고 그는 내다봤다. 특히 이들 기업이 투자한 업종을 통해 미래 청사진을 들여다볼 수 있다
올해 가장 투자 및 인수·합병 활동에 적극적으로 임한 대기업은 단연 SK그룹이다. SK가 M&A에 쏟아부은 자금만 총 13조 원. 국내 대기업 중 압도적으로 가장 많다.
특히 최태원 회장은 반도체와 바이오에 승부수를 던졌다.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부 인수(10조3000억 원)가 대표적인 예다.
인텔 낸드 인수 이전에도 공격적인 투자 행보는 이어져 왔다. 상반기에는 약 16년 전 당시 하이닉스반도체가 매각한 비메모리 부문인 매그나칩반도체의 파운드리 사업 인수에 재무적 투자자(FI)로 참여했다. 8월에는 영국 ARM 경쟁사로 꼽히는 미국의 반도체 설계 스타트업 ‘사이파이브(SiFive)’ 지분 투자를 단행했다.
완제품뿐 아니라 소재·부품 혁신도 이뤄졌다. SK실트론은 지난해 9월 단행한 듀폰의 실리콘 카바이드웨이퍼(SiC) 사업부 인수를 올해 3월 완료했다. SK머티리얼즈는 2월 금호석유 포토레지스트 사업(400억 원)을 품었다.
이 같은 투자는 반도체 수직계열화에 힘을 싣기 위한 그룹 차원 포석으로 풀이된다.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 역시 인텔 낸드 사업 인수와 관련해 “최태원 SK그룹 회장 역할이 매우 컸다”라며 그룹 차원 관심사가 반영됐다고 언급한 바 있다.
바이오 분야에도 과감히 투자했다. 최근 지주회사는 혁신 바이오 기업으로 알려진 미국 로이반트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2억 달러(2200억 원)를 투자해 ‘표적 단백질 분해’ 플랫폼을 활용한 신약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
현대차그룹은 자율주행, 전기차, 로봇 등 미래 모빌리티 분야로의 사업 확장을 가속화하고 있다. 올 1월 영국 상업용 전기차 전문 업체 ‘어라이벌’에 총 1억 유로(1290억 원)를 투자했고, 최근에는 세계적인 로봇 기업 미국 보스턴 다이내믹스 지분 80%를 확보했다.
특히 보스턴 다이내믹스 인수엔 정의선 회장이 이례적으로 사재 2400억 원을 털어 투자에 동참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의 전환과 미래 사업 역량 확보에 두 팔을 걷고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의 경우 이렇다 할 대형 M&A는 없었지만,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생태계 구축을 위한 투자가 두드러진다. 반도체 핵심 소재나 장비, 기술과 관련한 국내 상장사, 스타트업에 지분을 투자하는 형식이다.
7월 말 에스엔에스텍(659억 원), 와이아이케이(473억 원)에 이어 11월엔 케이씨텍(210억 원), 엘오티베큠(190억 원), 미코(217억 원), 뉴파워프라즈마(127억 원)까지 유상증자 참여를 통한 투자가 이어졌다. 모두 합하면 2000억 원을 넘는다. 일각에선 이 같은 투자 행보를 두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꾸준히 언급해온 ‘동행 철학’의 궤를 잇는 것으로 평가한다.
삼성넥스트·삼성벤처투자·삼성카탈리스트펀드 등 투자 자회사를 통한 해외 스타트업 투자도 꾸준히 이어졌다. 원격진료 등을 비롯한 헬스케어 분야를 비롯해 빅데이터, 차세대 양자컴퓨터 기업 등 아직 시장 규모가 크지 않지만, 가능성이 유망한 분야에 집중했다.
LG의 경우 로봇과 인공지능(AI), 전기차에 힘을 실었다. 캐나다 자동차 부품업체 마그나 인터내셔널과 전기차 부품을 생산하는 합작 법인(JV) 엘지마그나 이파워트레인(가칭)을 설립하기로 한 게 대표적이다.
이번 합작법인 설립으로 LG전자는 VS사업본부, ZKW, LG 마그나 합작법인 등 자동차 부품 사업의 3개 축을 완성했다. 재계는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전장 로드맵이 본격적인 시동을 건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2월에는 프랑스 클라우드 컴퓨팅 플랫폼 스타트업 ‘블레이드’에 이어 3분기 레메디, 레다테크, 지이모션, 티랩스 등에 투자했다. 모두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소프트웨어나 의료기기 등의 사업을 영위하는 해외 스타트업이다.
금액은 합계 수십억 원 수준으로 크지는 않지만, 구광모 LG 회장이 취임 이후 꾸준히 관심을 보여왔던 영역이 고스란히 반영된 투자라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LG는 이달 초 그룹 차원의 AI 전담 조직인 LG AI 연구원(LG AI Research)을 설립했다. LG전자, LG디스플레이 등 16개 계열사가 참여해 3년간 2000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미래 전략을 위한 대규모 투자가 이어진 건 해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을 놓고 코로나19 이후 ‘뉴노멀’ 시대에 대한 위기감이 반영됐다고 분석한다. 시중에 막대한 유동성이 풀린 상황에서 포스트 코로나를 위한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 교수는 “뉴노멀 시기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선 ‘노멀’하게 가선 안 된다는 위기감이 공유된 행보로 보인다”라며 “전염병은 언젠가 끝나겠지만, 그로 인해 재편된 산업 구조는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이 시기들 대비하기 위해 투자를 통한 포석 깔기를 시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특히 현대차그룹 등 기존 사업 포트폴리오 매출 구조를 변화시킬 만한 폭넓은 변화를 시도한 기업도 있었는데, 이는 선대 경영진과는 사뭇 다른 행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