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 심포지엄 등 다양한 활동
올해 4대 회계법인 女임원 약진
임원수만큼 발언권도 커져가길
김재신 한국여성공인회계사회(여공회) 회장은 서울 종로구 삼덕회계법인에서 가진 이투데이와 인터뷰에서 “법인, 기업, 공기업 등 사회 곳곳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여성 회계사들이 있다. 여공회는 이들의 만남의 장이 될 것”이라며 “경력 개발 지원에도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 그는 7대 한국여성공인회계사회 회장으로 취임했다. 많은 고민을 거듭한 결과다. 취임 전, 그는 자신을 향해 ‘어쩌면 가장 어울리지 않은 자리에 앉은 것은 아닌가’하는 질문도 던졌다. 막연한 희망과 현실 사이에서 회계사의 삶을 고민한 적 있는 내가 과연 여성 회계사를 대표할 수 있을지 말이다. 하지만 한 가지만 생각해보니 답은 명쾌했다. 먼저 회계사 길을 걸어온 선배로서 후배들을 위해서 마지막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다.
김재신 회장은 “때론 작은 우연은 사람이 걷는 인생길을 결정하기도 한다. 어느 날 친언니가 회계사를 준비하는 남자친구 이야기를 하면서 ‘너도 한 번 해봐’라고 무심코 던진 말에 내 일생을 걸게 됐다. 어느덧 회계사의 길을 걸어온 지가 30여 년이 됐다. 나의 뒷모습을 보는 후배들이 많아진 오늘을 실감한다”며 “그 후배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는지를 자문하면서 이 자리를 수락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1991년 회계사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1990년 한두 명에 그치던 여성 합격자 수는 그가 합격할 당시 비로소 10명으로 늘었다. 1995년이 돼서야 여성 합격자 비율은 10%대까지 올랐다. 여성 회계사가 늘어나자 이듬해 1996년 뜻을 모은 이들이 중심이 되어 여공회(1대 노석미 회장)가 출범했다.
그가 임기 동안 앞세운 건 ‘소통’이다. 시장 곳곳 흩어진 여성 회계사의 이야기를 한곳에 모아 함께 나누겠다는 포부다. 여성 회계사의 경우, 회계법인에 속하지 않은 비전업 회계사의 비율(약 40%)이 남성 회계사보다 많은 편이다. 이에 여성 회계사는 회계법인뿐만 아니라 일반 기업, 증권회사 등 사회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다만, 이처럼 성격이 각기 다른 집단에서 근무하다 보니 여성 회계사들의 소통 역시 쉽지 않은 편이다. 일반 기업의 경우, 동료 없이 혼자 근무하는 일도 다반사다. ‘회계사’로서 느끼는 고충을 함께 나누기가 어려운 현실이다.
그래서 올 10월, 여공회 소식지 ‘채움’이 창간됐다. 소소하더라도 좋으니 함께 일상을 나누자는 취지에서다. 발행ㆍ편집인은 김재신 회장이다. 그리고 이야기를 채우는 기자는 여공회 회원들이다. 직접 기고하고 편집도 하면서 이야기를 담았다.
32년간 회계사의 삶을 뒤로하고, 배우로 새로운 길을 걷는 선배, 아이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 시집을 발간한 엄마 등, 치열한 일상 속에서도 꿈꾸는 여성 회계사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김 회장은 “회계사들끼리 만나면, ‘회계사들은 지독히도 모이기 쉽지 않아. 정말 개인적이야’ 이런 말을 나누기도 한다. 사실 숱하게 듣는 말이다. 현재 2만2000명 회계사의 70%가 40대 미만이다. 여성 회계사가 약 20%인 점을 고려하면 2800여 명의 회원이 일이나 가정에 한창 허덕일 시기다. 잠시나마의 여유마저 사치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소식지가 작은 숨통이 되었으면 한다. 또 각자 위치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여성 회계사들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올해 공인회계사 최종합격자 중 여성은 28.6%다. 여성 공인회계사는 전체 공인회계사의 약 20%(4357명)를 차지했다. 하지만 4대 회계법인(삼일ㆍ삼정ㆍ안진ㆍ한영)의 여성 파트너 비율은 2~9% 수준이다. 반면, 세계 4대 회계법인인 PwC, KPMG, 딜로이트, EY 등의 여성 파트너 비율은 14~16%다.
지난달 여공회는 ‘공인회계사의 경력개발연구’ 심포지엄을 열고 여성 회계사의 현주소를 이같이 알렸다. 국내에서 공인회계사를 대상으로 광범위한 경력개발 및 경력 성공에 대한 인식조사를 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김 회장이 취임하면서 추진하는 핵심 사업 중 하나다.
연구를 주도한 이은형 국민대 교수는 “글로벌 회계법인은 사업적 이익 목적뿐만 아니라 사회적 책임과 당위성 측면에서 다양성과 포용성이 필요하다고 보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고객사의 요구에 신속하게 대응해야 하고, 특정 시점에 일이 집중되는 특성 때문에 업무 환경이 여성에게 불리하고 30대 여성 회계사들이 휴업을 선택하게 된다”며 실태를 분석했다. 또 연구팀은 이런 특징은 한국 회계법인에서 더 강하게 나타나고 여성 회계사들이 겪는 어려움도 더 크다고 진단했다.
김 회장은 예상한 결과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오히려 이번 전수조사를 통해서 실태를 파악하고 대안을 모색하고 싶었다고 한다.
김 회장은 “회계사들은 어떤 프로젝트에서 인차지나 매니저 등 책임자 경험을 해봤는지가 중요하다. 오늘날 인식이 많이 바뀐 것도 있지만, 아직도 여성 회계사에게 주요 직책 기회를 맡기는 걸 어려워하는 분위기다. 회계법인 분위기가 바뀌더라도 피감사인 측에서 여성 회계사를 반기지 않는 것도 여전히 남아있다”고 짚었다.
지난달 ‘공인회계사의 경력개발연구’ 심포지엄 발표에 따르면, 여성공인회계사 235명 중 28%는 ‘승진 및 성과평가 불공정’ 차별을 겪었다고 답했다. 이외에도 업무기회의 불공정(27%), 여성을 회피하는 고객의 거부감(20%) 등이 뒤를 이었다.
한 자릿수를 나타낸 여성 임원 비율이 나오자 ‘유리천장’을 우려하는 언론 보도가 잇따랐다. 하지만 그는 이 숫자에 집착하지 않았다. 사회 변화에 힘입어 후배들이 이 비율을 바꿀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이 있어서다.
김재신 회장은 “한두 명 여성 합격자가 나왔던 시절에서 오늘날 많은 여성 임원을 기대하기란 사실 어렵다. 과도하게 많으면 그게 오히려 역차별일 수 있다. 문제는 앞으로의 추이를 봐야 한다는 얘기다. 이제는 한두 명이 아니라 여성 회계사 합격자 수가 30% 수준을 나타내고, 능력 있고 경력 열망 가득한 후배들이 많은 시대다. 그럼에도 앞으로 이 한 자릿수가 여전히 바뀌지 않는다면, 그게 진짜 문제가 아닐까. 앞으로 이 숫자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사회가 함께 관심 두고 지켜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다양성을 추구하는 조직 문화 조성에 회계법인과 사회도 함께 하길 촉구했다. 기업의 혁신과 성장을 위해선 다양한 배경의 인재를 영입하는 게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지난 1일(현지시간) 나스닥은 상장기업에 최소 여성 1명과 아프리카ㆍ라틴ㆍ아시아계 등 소수 인종 및 성 소수자(LGBTQ) 최소 1명을 이사진에 포함해야 한다는 지침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안하기도 했다. ‘다양성’과 ‘포용’은 오늘날 글로벌 시장의 화두다.
김 회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인종보다 성별과 세대가 다양성의 핵심으로 꼽힌다”며 “올해 빅4 등 여성 임원의 약진이 돋보였던 한해다. 여성 임원 수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들이 경영위원회에 진입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기회도 함께 뒷받침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이를 위해 여공회는 올해 추진한 연구 성과를 토대로 한 단계씩 심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더불어 여성 회계사의 경력 개발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 분야의 진출을 지원하는 활동도 내년부터 본격화할 예정이다. 재능 기부 등 봉사 활동도 이어가면서 사회와 함께 나누겠다”며 의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