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우리만 힘든가요?
#1. 충남의 한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오희라(28, 가명) 씨는 직장생활 6년 동안 회사를 4번 옮겼다. 첫 번째 직장은 3년 8개월 만에 그만뒀고, 두 번째 직장은 6개월 만에, 세 번째 직장은 한 달 만에 사직서를 냈다. 네 번째 직장은 평생 다녀도 좋을 만큼 마음에 쏙 들었지만, 계약 기간이 종료돼 떠나야 했고, 다섯 번째 직장은 그럭저럭 만족하며 다니고 있다.
희라 씨는 “화장실 가는 거, 연차 쓰는 거, 외출하는 거 행동 하나하나를 지적하며 자기 기준에 맞추려는 윗사람들의 행동에 숨이 막혔다. 큰 실수를 해서 혼나는 거면 인정하고 사과하면 되니까 괜찮은데 군기 잡으려는 건지 작은 실수에도 너무하다 싶을 만큼 혼내고 화내는 일이 많아 견디기 힘들었다”며 “어느 날은 상사가 본인이 받았던 첫 월급 명세서를 보여주면서 ‘나 때는 80만 원 받고도 열심히 일했는데 요즘 애들은 이것보다 훨씬 많이 받으면서 받은 만큼 일을 안 하는 것 같다’라고 하더라. 나중에 그 상사가 내 험담까지 하고 다닌다는 얘길 들으니 참고 다니기 어려웠다”고 첫 직장 퇴사 이유를 밝혔다.
이후 희라 씨는 두 번째 직장을 구했지만, 1년 계약 기간의 절반도 못 채우고 나왔다. 첫 직장에서 사사건건 간섭하는 상사에 질려 묵묵히 일만 했는데 돌아온 대가는 “90년생은 원래이래요?”라는 차가운 평가였다. 그는 “뭐 때문에 부장이 그런 말을 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때 너무 당황했고 기분 나빴던 감정만 생생하다. 짐작해 보면 다른 사람들처럼 살갑게 굴거나 주변에 관심 두지 않았던 것, 딱 내 할 일만 하는 게 마음에 안 들었던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윗사람의 잣대로 아랫사람을 평가하는 꼰대를 만날 때마다 직장생활을 견디기 어려웠던 희라 씨는 그렇게 6개월, 1개월 점점 퇴사 시점이 빨라졌다.
#2. 4년 차 농업직 공무원 임시원(29, 가명) 씨는 하고 싶은 말을 담아두지 않고 쏟아내는 그야말로 ‘90년대생’이다. 출근 시간보다 일찍 오라는 선배에게 “선배는 일찍 와서 주무시잖아요. 초과수당 찍으려고 일찍 오는 거 아니에요?”라고 맞받아치는가 하면, 점심시간마다 선택권을 안 주고 똑같은 식당으로 이끄는 상사에게 “우리끼리 먹고 싶은 거 먹으러 갈게요”라며 당돌하게 말한다.
그런 시원 씨의 모습에 주변 사람들은 혀를 내두르지만, 그가 처음부터 당돌한 캐릭터였던 것은 아니다. 시원 씨는 공무원이 되기 전 다녔던 직장에서 사무실 내에서 실내화를 신었다는 이유로 한 선배와 감정의 골이 깊어졌고, 그의 험담으로 다른 선배까지 합세해 사소한 일에도 눈물이 쏙 빠지게 혼내는 ‘꼰대 문화’를 경험했다. 그 뒤 퇴사를 결심했고, 1년 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 합격했다. 아무리 보수적인 공직 사회라고 하지만, 이전 직장에서처럼 꼰대 상사에게 당하고도 아무 말 못 하는 답답한 사람이 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첫 직장에서 감히 상상도 못 했던 일들을 지금은 가뿐히 해낸다. 시원 씨는 “분위기가 다르다. 이전 직장은 수직적이고, 보수적인 문화에다 이동이 없어 같은 사람하고 평생 일해야 했다면 지금은 수평적인 분위기에 사람들이 온순하다. 또 언제든 팀을 옮길 수 있어 눈치 보지 않고 하고 싶은 말 다 하게 된다”고 말했다.
#3. 제2금융권에서 일하는 6년 차 직장인 강혜란(28, 가명) 씨는 입사 초엔 선배한테 도울 것이 없느냐며 먼저 묻고, 선배가 퇴근하기 전까지 자리에서 일어나는 건 엄두도 못 냈다고 한다. 하지만 월급은 오르지 않고, 한 일에 비해 보상도 못 받는다는 생각에 일에 의욕을 잃었다. 제 할 일만 하고 퇴근하는 직장인으로 변했다지만, 자기 일을 떠넘기거나 출근 시간보다 일찍 오라는 상사의 말에 군말 없이 ‘네’라고 답한다.
혜란 씨는 “어느 날은 차장이 출근 시간에 맞춰 오는 걸 지적하며 10분 일찍 오라고 하더라. 짜증 났지만 어쩔 수 없이 알겠다고 했는데 다음 날 내가 2분 늦게 도착했다. 그래도 출근 시간 전에 온 건데 차장이 막 화를 내더라. 그 이후로 사람들은 누구 한 명 들어올 때마다 시계를 보며 10분 일찍 왔나 감시한다. 한 번은 그 얘기를 한 차장이 좀 늦었는데 ‘바지가 뜯어져서 늦었다’라며 묻지도 않은 말을 하며 들어오더라. 출근 시간에 맞춰 와서 일해도 충분하고, 항상 그래왔는데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해서 시간에 예민한 분위기를 만든 건지 모르겠다. 메신저로 매일 그 차장 욕을 한다”고 말했다.
앞에선 못하고 뒤에서 싫은 소리를 하는 혜란 씨는 “우리는 법인이 하나라 평생 같이 일해야 한다. 몇십 년 같이 일해 온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까 거기만의 문화나 분위기가 있다고 해야 하나? 다들 그렇게 꼰대의 말에 아무 말도 못 하는 구조로 굳어졌다. 거기서 혼자 반기를 들면 진짜 이상한 사람이 된다”고 말했다.
혜란 씨는 퇴근 시간 ‘땡’ 하자마자 집으로 가는 것과 메신저로 상사 욕하는 것이 직장생활의 유일한 낙이라고 했다. 우리 세대를 ‘할 말 다 하는 세대’로 규정한 현실에 ‘NO’를 외치며 억울해한다.
◇“희생해도 보상 없으니 가만히 있죠” = 역사상 가장 특별하고 특이한 신세대. 최근 몇 년 사이 사회와 산업은 그리고 정치는 ‘90년대생 이해하기’를 숙제처럼 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주요 소비층으로 떠올랐으며 기성 정치 문법을 거부하는 90년대생을 이해하기 위한 책이 꾸준히 출간됐고, 베스트 셀러에 올랐다. 기성세대가 바라보는 90년대생은 충성심 없고, 쉽게 포기하고, 고집이 세고, 이익만 챙기는, 이해하려 해도 이해하기 쉽지 않은 존재들이다.
90년대생은 회사의 성장과 나의 성장을 동일시하지 않는다. 대가 없는 노동은 하고 싶지 않다. 무엇을 더 중시하느냐, 생각의 차이일 뿐인데 사회와 기성세대는 이런 모습을 ‘충성심 없다’고 평가한다. 지난해 8월 행정안전부가 공무원 3006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주니어 공무원은 일한 만큼의 보상(44.6%)과 성취감(39.4%)을 중요시하는 반면 시니어는 성취감(44%)과 소속감(35.1%)을 더 가치 있게 생각했고, 일한 만큼의 보상(34.9%)은 그다음으로 중시했다. 90년대생 직장인 시원 씨와 혜란 씨의 생각도 같았다. 충분한 보상이 주어지면 그만큼 열심히 일할 준비가 돼 있는데 왜 ‘보상 없는 희생’을 강요하느냐는 것이다.
혜란 씨는 “보상을 확실히 해주면 일을 더 하라고 해도 상관없는데 우리 회사는 말 그대로 희생을 강요하는 구조다. 위에서 시키면 보상이 없어도 그냥 해야 한다. 다들 그렇게 하니까 어쩔 수 없이 따라가게 된다. 초반에는 ‘평생 직장’이라는 생각에 다른 사람의 일도 도우면서 열심히 했는데 내가 하는 일에 비해 월급이 적다고 느끼고 연차가 쌓이면 승진을 하고 월급이 올라야 하는데 제자리다. 위에 쌓인 인력들 때문에 승진이 막혀 있으니까 월급도 안 오른다. 일이 하기 싫어지고 딱 내 몫만 하게 된다. 보상도 없는데 다른 사람 일 도와줘봤자 ‘시키면 다 한다’ 이런 이미지만 만들어져 나한테 일이 몰린다”고 말했다.
시원 씨는 회사가 아닌 자신을 위해 희생한다고 했다. “나는 업무시간을 넘겨서 일할 때가 많다. 내가 이렇게 일할 수 있는 건 초과근무 수당이 있기 때문이고, 좋은 평가를 받아 승진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난 회사가 아닌 내 미래를 위해 희생한다. 우리는 실적을 매겨서 보너스를 주니까 위에서 신규 사업을 맡으라고 하면 기분 좋게 할 수 있다. 이게 잘 되면 또 성과를 만드는 거고 그게 보너스, 승진하고 연결되는 거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젊은 꼰대 안 되려 침묵” = 90년대생도 어느덧 선배가 됐다. 그들이 바라보는 후배의 모습은 어떨까. 90년대생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태도가 후배들과 사뭇 다르다고 입을 모으지만, ‘다름’을 신경 쓰거나 굳이 지적하지 않는다. 그들이 겪었던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애쓴다.
혜란 씨는 “요즘 애들이라고 말하는 것도 웃기지만, 새로 들어온 애들은 같이 일하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느낌이다. 휴가 전날 다녀오겠다고 한마디라도 하고 가면 좋을 텐데 아무 말 없이 그냥 가서 나중에 ‘아 연차구나’ 알게 된다. 결재만 올리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또 사무실 청소를 나눠서 하는데 선배들이 먼저 시작하면 우리는 좌불안석이라 거드는데 후배들은 시킬 때까지 안 하더라”고 말했다. 시원 씨 역시 “연차 관련해선 나도 동의한다. 휴가 가기 전 다른 사람에게 인수인계 간단히 하고 가면 좋은데 전혀 안 한다”고 말했다.
후배들의 생각과 태도가 내키진 않지만,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말을 아낀다. 시원 씨는 “내가 꼰대 문화를 싫어하니까 후배들이 어떤 행동을 해도 간섭하지 않으려 한다. 한 번은 스물여섯 살인 후배가 크롭티에 딱 붙는 배기바지를 입고 왔다. 손을 위로 올리면 배꼽이 다 보이더라. 솔직히 보기 안 좋았지만, 본인 스타일이겠거니 하고 넘겼다. 근데 그 후배가 계속 그런 차림으로 오니까 선배들이 나더러 한마디하라고 시켰는데 난 지적하지 않았다. 내가 왜 후배 옷 입는 것까지 간섭하나”라고 말했다. 희라 씨는 “나도 후배들이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해도 개입하지 않고 아예 안 보려 한다. 업무시간에 에어팟을 끼고 일하는 후배가 있는데 옆 사람이 불러서 반응할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근데 가끔 옆에서 불러도 못 들을 정도로 노래를 크게 듣는 후배가 있는데 그건 좀 별로다. 그렇다고 해서 소리를 줄이라 말라 얘기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다시 직장생활 한다면 할 말 하겠다” = 이번 생이 우리 모두에게 처음이듯, 누구에게나 서툴고 어색했던 신입사원 시절이 있었다. 90년대생도 그렇다. 어디까지가 당당하고 또 어디까지가 되바라진 건지 구분하기 쉽지 않았다.
혜란 씨는 “입사 후 처음 설정한 캐릭터가 중요한 거 같다. 나는 회사에서 아무 말도 못 하는 애, 시키면 그냥 다 하는 애다. 처음엔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회사 분위기를 모르니까 혼나면 혼나는 대로 기죽어 있었고, 잘해 주면 잘해 주는 대로 웃었다. 그런 내가 갑자기 내가 할 말 다하는 캐릭터로 바뀌는 건 진짜 웃긴 일이다. 그렇지만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할 기회가 있다면 좀 더 당당하고, 거절도 좀 잘 하는 그런 캐릭터로 시작하고 싶다”고 말했다.
희라 씨는 미움받을 용기를 배우겠다고 말했다. “처음엔 모든 사람에게 잘 보여야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니까 내가 너무 힘들더라. 이제는 누구 하나쯤은 날 미워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다. 처음부터 그런 생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면 좀 더 떳떳하게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을 거다.나는 속에 있는 말 거리낌 없이 다하는 그런 캐릭터까지는 아니어도 거절만 잘 하는 사람으로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싶다”고 밝혔다.
시원 씨는 어떨까. 그는 “공직 사회가 너무 좁다 보니 모두에게 잘 보여야겠다는 생각이 늘 있다. 그럼에도 내가 이렇게 할 말 다할 수 있는 건 사람들이 내 얘기를 버릇없다고 받아들이지 않고 당당하다고 봐 줘서 그런 거 같다. 난 지금 캐릭터 유지하면서 내 미래, 승진을 위해 열심히 일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