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지 유통바이오부 기자
'성골'. 연말연초 명품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군 키워드다. '성골'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땐 ‘성공’의 오타로 착각했다. 구하기 힘든 명품을 누구보다 재빠르게 손에 쥐기 위해 매장 문이 열리자마자 뛰어가는 ‘오픈런’과 함께 거론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 오타로 치부하기엔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뭘까. 오픈런 성공이 아니라면, 매장에 ‘성’공적으로 ‘골’인하라는 뜻일까. 아니면 설마 신분제의 ‘성골’인가.
그 성골이 맞았다. 신라시대 신분제도인 골품제 최상단을 차지하고 있는 성골 말이다. 백화점 등 국내 정식매장에서 제값주고 사면 ‘성골’, 병행수입이나 중고로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사면 ‘진골’이었다. 명품을 구입하지 못해 리셀러에게 피 같은 웃돈을 얹어주고 사면 조롱섞인 ‘피골’로 불렸다.
신분제의 상단에 입성하는 것을 일종의 유희처럼 표현하지만 사실 직접 뛰어드는 이들은 다양한 전략까지 세울만큼 치밀하게 접근했다. 조직적이고 계획적이었다. 오픈런에 드는 수고를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적절한 장소를 찾고 대기한다. 휴가를 쪼개 부지런히 움직여 대기순번을 최소화하고, 수 시간을 기다려 마침내 얻은 명품. 남들보다 몇배의 노력을 투입해 원하는 결과물을 얻은 이들만이 성골이라는 칭호를 얻을 수 있다.
명품 구매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내돈내산’(내 돈주고 내가 산 물건)이 대세인 시대에, 남이 산 롤렉스 시계나 샤넬백에 인색할 이유는 없다. 다만, 동시에 ‘위드 코로나 시대‘라는 사실이 뼈아프다. 시장 참여자라면 누구라도 고통스러웠을 지난 한해, 명품시장은 유독 활황이었다. 반면, 어디 그뿐이겠느냐만, 영세 자영업자들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성골’지망생들의 성지 중 하나인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길 건너 맞은편 반포쇼핑타운 지하식당가를 찾은 적이 있다. 코로나 여파로 매출 절반 이상이 줄었다던 한 사장님의 얼굴은, 그야말로 피골(皮骨)이 상접해보였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완전히 다르게 펼쳐지는 두 세상. ‘성골’과 ‘피골’은 더 이상 명품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시대 양극화의 단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