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격의료, 모빌리티, 핀테크 등 규제 풀어야
올해 국내 스타트업계에 ‘합종연횡’ 바람이 불 전망이다. 대기업부터 규모가 비슷한 스타트업까지 다양한 기업들이 뭉칠 것으로 예상하면서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 원 이상)의 등장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다만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는 유니콘 기업이 등장하려면 그 무엇보다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시장’이 필요하다는 견해다. 이 이사와 화상회의 플랫폼을 통해 비대면으로 만나 관련 이야기를 들어봤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 는 대한민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건강한 발전을 목적으로 하는 비영리 민관 협력단체다.
이 이사는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촉발한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국내 스타트업계는 크게 나쁘지 않았다고 봤다. 민간 자금이 얼어붙어 시리즈A 단계 초기 기업이 어려움을 겪은 미국, 중국 등과 비교하면 상황이 나았다. 그는 “국내는 정부 주도 자금이 과반을 차지하는 만큼 외부 요인에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기업들의 경우 “업종에 따라 희비가 갈렸고 언택트(비대면)나 기업 간 거래(B2B) 스타트업이 크게 성장했다”며 “특히 B2B 기업이 성장한 것은 굉장히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짚었다.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에 집중하던 스타트업계가 소프트웨어를 통해 생산성을 올리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단 것이다.
올해 스타트업계의 키워드로는 △대기업의 ‘오픈 이노베이션’ 흐름 △스타트업의 합종연횡 △전략적 투자자(SI)의 판 △커머스발(發) 대형 합병 가능성 등을 꼽았다.
이 이사는 “대기업이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을 설립해 투자하거나 사내벤처 등을 통해 기존 사업과 스타트업을 결합해 성장 동력으로 삼는 모습이 보인다”며 오픈 이노베이션 분야가 탄탄한 만큼 기대해볼 만 하다고 말했다. 오픈 이노베이션이란 기업의 혁신을 위해 대학교, 스타트업 등 외부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다.
또한, 이 이사는 “대형 스타트업들의 합종연횡 또는 작은 스타트업에 대한 인수 투자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상대적으로 큰 스타트업이 작은 기업을 인수합병(M&A)하거나 지분 투자에 나서 몸집을 불릴 수 있단 것이다. 그러면 업종 안에서는 점유율을 넓히고, 투자자들에는 ‘엑시트(투자금 회수)’ 기회를 제공한다.
커머스 분야에서 대형 M&A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스타트업도 주목받을 것이란 전망도 내놨다. 관련 스타트업이 크게 성장함에 따라 기업가치가 정확하게 산출되기 시작했고, 엑시트 시점도 다가오는 만큼 대형 딜이 성사할 가능성도 커진 것이 이유다.
이 이사는 “판은 두 가지로 가고 있다”며 “대형 스타트업들은 펀드를 만들어 작은 스타트업에 투자하며 순서를 밟아서 가고 있고, 작은 스타트업끼리는 서로 지분을 주고받으며 M&A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새로운 유니콘 기업이 등장하지 못했단 지적에 대해 이 이사는 유니콘 기업이 나오지 않았다고 단정 짓긴 어렵다고 했다. 그는 “비대면 산업의 경우 자체적인 현금흐름이 좋아 투자를 받지 않았을 것”이라며 “코로나19 시대에 이 정도면 선방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니콘 기업을 육성하기 위해선 그 무엇도 아닌 ‘시장’이 가장 필요하다고도 했다. 이 이사는 “원격의료, 모빌리티, 핀테크처럼 해외에서 유니콘이 많이 나온 영역에 국내 스타트업이 아직 못 들어가고 있지 않나”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10조 규모의, 유니콘이 나올 만한 크기의 시장을 열어주면 그 시장 안의 1등부터 3등까지가 유니콘이 된다”며 “규제가 문제가 아니라 정책 조정기능이 실종한 것이 국내 시장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이사는 스타트업의 기업가치는 결과에 불과하다고 했다. 대신 그는 업계에 양질의 인력이 대거 유입된 점에 주목했다.
이 이사는 “스타트업의 수준은 기업 가치나 투자 유치액이 아닌 조직을 중심으로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스타트업 기업들이 커지면서 웬만한 대기업 출신들이 임원 등 고위직으로 들어오기 어려워졌고 다양한 영역의 인력들이 충원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중요한 것은 조직의 질”이라며 “최근 벤처투자·스타트업 업계에 사람 구하기 힘들단 말이 돌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이사는 벤처투자 업계에서 심사역 인력들이 대거 이동할 수 있는 점에도 주목했다.
그는 “대기업ㆍ중견기업이 CVC를 만들면서 시장에 잔잔한 물결이 계속 일 것”이라며 “심사역이 움직이면서 사람을 놓치고, 새로 뽑을 사람은 없어 인력이 절실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