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11시 30분께, 화려한 백화점을 끼고 들어간 서울 ‘영등포 쪽방촌’. 창고같이 자물쇠 달린 문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인기척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점심 께 연탄을 갈러 나온 한 주민만이 ‘안에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준다.
좁은 골목 낯선 눈빛을 주고받다 어색해 인사를 건넸다. “오늘 김밥 날이구나”라며 마스크 위의 눈이 웃는다. 기자라고 하니 박 모씨(58세)는 “이곳에 온 젊은 사람은 봉사자들밖에 없어서”라며 눈을 피했다. 식사 봉사 기관 중 한 곳의 메뉴가 최근 국과 밥에서 김밥으로 바뀌었단다. 점심시간에도 골목은 조용했다.
주민들은 코로나19 이후 끼니 해결이 쉽지 않다고 했다. 파지 팔아 쥐어진 몇천 원으로 생선 한 마리 사서 ‘오물오물’ 나눠 먹는 재미도 이젠 없다고 한다. 추 모씨는 “혹시라도 (코로나19) 걸릴까 봐 나가서 (파지를) 줍지도 못한다. 날 좋을 때, 장초 줍는 사람들만 나온다. 옆집에 찌개도 못 준다. 이젠 문 딱 닫아 놓고 내 것만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매출 신장 상위권 백화점 매장의 키워드가 바로 ‘명품’이라고 한다. 코로나19 보상심리로 프리미엄 상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 자산시장(부동산ㆍ주식) 활황에 주머니가 두둑해진 사람들도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3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상위 20% 계층(5분위)의 소득이 전년 동기 대비 2.9% 증가했지만, 하위 20%(1분위)는 1.1% 줄었다. 또한, 하위 40% 가구의 소득이 줄어드는 동안 상위 60% 가구는 오히려 늘었다. 소득 상위 가구로 갈수록 증가 폭은 비례해서 커졌다.
자산 양극화 현상도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지난해 3월 기준 순자산(자산에서 부채를 뺀 금액) 보유 상위 20%의 평균 순자산은 11억2481만 원으로 하위 20%(675만 원)보다 11억1000만 원 이상 많았다.
또한, 순자산 지니계수는 2017년 0.584에서 지난해 3월 말 기준 0.602로 높아졌다. 지니계수는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하다. 2013년(0.605) 이후 7년 만에 최고치다. 순자산 지니계수가 악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부동산·주식 같은 자산의 가격이 급등하면서 계층 간 격차도 덩달아 커졌다는 설명이다.
최근에는 자산 시장에 뛰어들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서 포모(FOMO·소외 공포증) 심리가 확산하는 분위기다. 포모 심리란 부동산과 암호 화폐, 주식 등 모든 자산이 부풀려지는 상승장에서 소외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현상을 풍자한 ‘벼락거지’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빚도 안 지고 살았는데 남들이 ‘갑자기’ 돈을 버니 상대적으로 가난해졌다는 의미다. 이번 생에는 극복하기 어렵다는 자조 섞인 말이 함께 나온다.
노량진에서 군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 모씨(29세)도 조급한 마음에 지난 11월 처음으로 주식을 시작했다. 요새 카페나 음식점 아르바이트도 잘 구하지 않다 보니 적더라도 생활비에 보태고 싶다는 마음에서다. 비상금으로 투자하니 손이 떨렸다. 100원, 200원 오르내림에도 희비가 교차했다.
그는 “조금이라도 생활비에 보태려고 주식을 시작했지만 온종일 차트만 보게 되더라. 공부에 집중할 수 없어 최근에 (증권 어플을) 삭제했다”고 털어놓았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유 모씨(28세)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그의 친한 친구들이 있는 SNS 단체방에는 오로지 ‘주식’ 이야기밖에 없다. 시장이 출렁인 날, 카카오톡을 보면 대화가 수백 개씩 쌓여있다고 한다.
그는 “길어진 수험 준비 탓에 취업한 친구들 사이에서 뒤처진다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최근에는 주식으로 얼마 벌었니 몇 배가 됐느니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더 조급해진다”며 “수험 기간이 길어질수록 집에 부담만 줄 뿐이다. 하루빨리 합격해서 부모님 부담을 덜어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또 다른 세상에서는 돈이 넘쳐난다. 바로 부동산과 주식시장이다. 영등포 쪽방촌에서 서울교 하나만 건너면 여의도에 도착한다. 유례없는 주식 활황에 “지나가는 개도 삼성전자 주식 한 주 정도 물고 다닌다”는 우스갯말도 나온다.
말 그대로 ‘돈(유동성) 파티’를 벌인다는 풍자다. 소비현장 곳곳에서 동학개미들의 씀씀이도 달라졌다. 가성비 대신 고가품을, 기왕이면 멋지고 폼나는 프리미엄 상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것.
13일 서울 여의도 증권가 사이에 위치한 한 식당 앞. 발열 체크를 위해 사람들이 모여있다. 이날도 예약은 만석이다. ‘룸’으로 운영되는 이 식당은 지난 연말 특수를 누리기도 했다. 증권가 회식, 비즈니스 미팅 등으로 지난 12월 예약은 꽉 찼었다. 이 식당 사장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5인 이상 받을 수 없다는 점이 매출에 영향을 주긴 했지만, 대체로 예약은 다 차는 편”이라고 말했다.
여의도 부동산중개업소도 때아닌 호황을 누렸다. A부동산 대표는 “작년 하반기부터 오피스 임대 문의가 많았다. 오피스 상권인 여의도 특성상 작년 주식 시장이 흐름과도 무관치 않겠냐”고 말했다. “영등포 인근에 살던 증권맨들이 여의도로 입성하면서 ‘중소형’ 오피스의 수요가 크게 늘었다. 작년 하반기에 많이 입주했을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