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코노미] 유산이 탐나 살인을 저지른 범인은 누구? 영화 ‘나이브스 아웃’

입력 2021-01-22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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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코노미는 넷플릭스와 왓챠 등 OTT(Over The Top) 서비스에 있는 콘텐츠를 통해 경제를 바라보는 코너입니다. 영화, 드라마, TV 쇼 등 여러 장르의 트렌디한 콘텐츠를 보며 어려운 경제를 재미있게 풀어내겠습니다.

▲영화 '나이브스 아웃' 포스터 (출처=네이버 영화)

85세 생일을 맞은 백만장자 소설 작가 할런. 그는 호화로운 저택에서 자식들에게 둘러싸여 행복한 생일을 맞는다. 그런데 다음 날, 할런은 목에 칼을 그은 상태로 죽은 채 발견된다. 현지 경찰은 이렇다 할 물증이 없어 자살로 사건을 마무리 지으려 한다. 그때 누군가의 의뢰를 받은 사립 탐정 블랑이 나타나 "이건 살인사건"이라고 말하며 모두를 충격에 빠뜨린다. 영화 '나이브스 아웃'(Knives Out, 2019)이다.

사실 할런의 자식들은 부유한 아버지에게 빨대 꽂은 채 호시탐탐 그의 재산을 노렸다. 모두 살해 동기가 있어 보이는 상황. 그러던 중 자식에게 한 푼도 물려줄 수 없고 모든 재산을 외국인 노동자 출신 간호인 마르타에게 남긴다는 유언장이 공개된다. 늘 아버지의 재산을 탐내던 자식들은 분노를 표출하고, 거짓을 말하면 토를 하는 습관을 지닌 간병인 마르타는 자꾸 구역질한다. 유산을 둘러싼 갈등이 극에 달한 상황.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영화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할런은 생전 미스터리 스릴러 작가로 대성공을 거두며 백만장자가 됐다. (출처=네이버 영화)

유산을 둘러싼 갈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일어나는 오랜 난제다. 특히 물려받을 재산이 많고 물려받고 싶은 자식이 많을수록 갈등은 커진다. 지난해 아르헨티나의 축구 전설 마라도나가 죽은 이후 일어난 상속 분쟁은 월드컵을 방불케 한다. 영국 일간지 '더 선'에 따르면 자식을 포함해 유산 상속 분쟁에 뛰어든 그의 형제 또는 가족들은 총 16명에 달한다.

마라도나는 본처와 얻은 딸 2명 외에 혼외 자식을 6명이나 뒀다. 그의 죽음 이후 본래 알려진 자식들 외에 2명이나 더 자신이 마라도나의 자녀라고 주장하고 나타나 충격을 안겼다. 결국, 지난달 17일 아르헨티나 법원은 친자 확인을 위해 마라도나 시신을 화장하지 말고 보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의 유산은 우리 돈으로 약 556억 원 정도다.

▲나이브스 아웃에는 우리에게 캡틴 아메리카로 익숙한 크리스 에반스가 등장한다. 크리스 에반스가 맡은 '랜섬'은 '할런 크롬비'의 망나니 장손으로, 미스터리 서스펜스의 핵심을 이끌어간다. (출처=네이버 영화)

상속 문제는 국가 경제 정책의 하나로 다뤄지기도 한다. 지난해 10월 삼성 이건희 회장 사후 상속세 문제가 대표적이다. 지난달 22일 그의 주식 상속세가 역대 최고인 11조 원 규모로 확정되자 상속세 부담이 너무 과도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건희 회장 일가는 이 상속세를 4월 말까지 내야 한다.

현재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명목세율 기준 5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일본(55%)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하지만 상속세는 실제 납부자 수가 많지 않고, 이들이 각종 공제를 받아 실제로 부담하는 세율은 훨씬 낮다는 주장도 있다.

삼성 일가가 상속세 마련을 위해 이건희 회장의 미술품 감정을 맡겼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상속세를 미술품과 문화재로 대신하는 물납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미술 작품과 문화재의 국외 유출 방지와 예술 진흥을 위해서다. 현행법상 상속세 물납은 부동산과 유가증권만 가능하다.

▲할런의 자식들은 간병인 마르타에게 시혜적인 친절을 베풀지만, 그에게 모든 재산을 남긴다는 할런의 유언장이 공개 된 후 태도를 완전히 바꾼다. (출처=네이버 영화)

상속제 물납은 지난해 일제강점기 문화재 수집가였던 간송 전형필의 후손이 국가지정 보물 불상 2점을 경매에 내놓으면서 불거졌다. 그가 불상 2점을 경매에 내놓은 것이 상속세 부담 때문으로 알려지며 물납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커졌다. 지난해 11월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포함한 문화예술·미술시장 활성화 4법을 대표 발의했다.

고(故) 이건희 회장은 미술품 수집광으로, 그의 컬렉션은 약 1만2000점에 달한다. 감정 중인 미술품의 가치는 1조5000억 원대로 알려졌다. 그의 컬렉션에는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청동조각과 마크 로스코의 색면 추상화 등 현대미술 명작이 포함됐다. 이 작품들이 상속세 때문에 해외 경매에서 낙찰되면, 우리 문화 자산이 유출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름 난 사설탐정 블랑은 알 수 없는 자에게 사건을 의뢰받고 할런 저택으로 향한다. (출처=네이버 영화)

유산 상속 논란은 때로 자식의 유산을 두고도 벌어진다. 2019년 故 구하라 씨 오빠 구호인 씨는 "어린 구 씨를 버리고 가출한 친모가 구 씨 사망 이후 상속 재산의 절반을 받아 가려 한다"며 이른바 '구하라 법' 제정 청원을 올려 1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하지만 당시 구하라 법은 20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해 자동 폐기됐다.

구하라법 입법 움직임은 21대 국회 들어 본격화됐다. 지난해 12월 공무원판 구하라 법이라 불리는 '공무원연금법 및 공무원재해보상법 개정안'이 통과됐고, 법무부는 이달 7일 부모가 자녀 양육 의무를 저버리거나 자식을 학대한 사실이 있을 때 상속권을 박탈하는 `상속권 상실제도'를 입법 예고했다.

▲고풍스러운 저택 속 존재감을 드러내는 의미심장한 칼 미장센은 영화의 보는 재미를 더한다. (출처=네이버 영화)

다시 영화로 돌아와 제목 '나이브스 아웃'(Knives Out)은 직역하면 '칼을 꺼내 들다'를 뜻한다. 영화는 할런의 죽음 이후, 마치 칼을 꺼낸 듯 등장인물의 마음속 뒤틀린 욕망을 헤집어 놓는다. 그와 동시에 폭풍처럼 몰아치는 탐욕과 서스펜스 속, 빛을 발하는 선한 마음을 보여준다. 선한 용기가 결국 모든 것을 쟁취하는 할리우드식 교훈은 덤이다. 돈 앞에서는 그 누구도 장사 없다지만, 영화에서도 현실에서도 역시 세상을 떠난 이의 유산 앞에서는 '품위'가 가장 중요한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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