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이사회가 KBS 수신료를 인상하는 조정안을 상정한 가운데, 국민 여론은 싸늘하기만 하다. KBS가 공영방송의 역할을 다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수신료만 더 받으려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대다수다.
KBS 이사회는 27일 KBS 수신료를 월 2500원에서 3840원으로 인상하는 조정안을 상정했다. KBS 경영진은 이날 수신료 조정안을 제출하면서 코로나19 등 재난이 일상화된 시대에 공익의 가치를 키우기 위한 것이라고 배경을 밝혔다.
현재 수신료는 컬러TV 방송을 계기로 1981년에 정해진 것으로, 41년째 동결된 상태다. 2007년, 2011년, 2014년에도 조정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승인을 받지 못하고 회기 만료로 폐기된 바 있다.
KBS가 수신료로 거둬들이는 돈은 2019년 기준으로 6705억 원이며, 이는 전체 재원의 약 46%를 차지한다. KBS의 요청으로 수신료가 3840원으로 오를 경우엔 수입이 약 3594억 원 늘어나 수신료 수입이 1조 원을 넘어서게 되며, KBS 전체 예산의 53.4%를 차지하게 된다.
KBS는 현재 수입으로는 방송법에 정해진 공적 책무를 수행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호소한다. 40년간 1인당 국민소득·소비자물가지수·신문 구독료·영화 관람료 등이 적게는 300%대부터 많게는 2800%대 증가율을 보이는 동안 수신료만 '제자리걸음'이라는 것이다. 또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은 우리보다 5~9배 많은 수신료를 받으며 재원에서의 비중도 70~90%라고 강조했다.
양승동 KBS 사장은 이날 수신료 조정안이 이사회에 상정된 후 입장문을 내고 "수많은 종편과 PP(방송채널사용사업자) 채널들, 거대자본을 앞세운 넷플릭스·유튜브 등 상업 매체들이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KBS는 공영방송의 정도(正道)를 찾아 공익만을 바라보며 가고자 한다"며 "우리의 충정과 의지를 헤아려달라"고 촉구했다.
KBS는 연이어 수신료 인상의 필요성을 호소하고 있지만, 수신료 납부 대상인 국민의 여론은 매우 부정적이다. 지난해 6월 미디어오늘-리서치뷰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수신료를 인상해야 한다’는 응답은 6%에 불과했다. 오히려 대다수는 인하하거나(14%) 폐지해야 한다(46%)고 응답했다.
국민들이 41년째 동결된 수신료 인상에 반대하는 이유는 뭘까. 최근 미디어 이용 행태가 변화하면서 TV 시청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 하나의 원인으로 꼽힌다. 넷플릭스·유튜브 등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에서 콘텐츠를 소비하는 이용자들이 증가하면서 TV 시청에 따른 수신료 납부에 대한 거부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보통신연구원(KISDI)의 2019년 방송 매체 이용행태 조사에 따르면 일상생활에서 필수적인 매체로 'TV'를 선택한 비율은 32.3%로, '스마트폰'이라는 응답자(63.0%)보다 30.7%포인트 적었다. 또한, 온라인동영상제공서비스(OTT) 이용률은 전체 응답자 기분 52.0%로 전년(42.7%) 대비 크게 증가했으며, 이용 기기는 스마트폰(91.6%), TV 수상기(5.4%), 노트북(5.2%) 순으로 나타났다.
20대 직장인 A 씨는 "넷플릭스는 4인 요금제로 사용하면 인당 4000원대인데 KBS보다 선택의 폭도 훨씬 넓고 콘텐츠의 질도 좋다"며 "연령이나 취향 타겟팅이 안되고 원하는 시간에 볼 수도 없는 공영방송을 넷플릭스만큼 내고 봐야 한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A 씨는 "수신료 올린다고 대단한 콘텐츠 개편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드라마고 예능이고 타 방송사보다 재미도 없고 돈만 받아가겠다는 거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공영방송으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수신료 인상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7월 폭우로 부산 지역에서 사망자가 발생했음에도 재난방송 대신 예정된 음악방송을 진행한 사례와 2019년 강원도에 대형 산불이 발생했을 때도 특보를 뒤늦게 보도한 사례, 그리고 지난해 7월 '검언유착 오보' 사태 등이 대표적이다.
20대 직장인 B 씨는 "KBS가 말로만 '수신료의 가치'라고 했지 행동으로 보인 적 있느냐"며 "다른 방송국 예능 프로그램을 베낀 것만 수두룩하고 KBS 뉴스가 수신료를 올려 받을 정도로 '정론직필'한 것도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구조조정 등의 경영 개선 노력 없이 세금으로 적자를 메우겠다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2019 KBS 경영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KBS의 총비용 대비 인건비 비중은 36.3%로 타 방송사(MBC 21.7%, SBS 15.1%)보다 현저히 높다. KBS 직원 중 1억 원 이상 연봉자도 2018년 기준으로 무려 51.9%에 달했다.
30대 직장인 C 씨는 "지금 KBS의 인건비가 35%를 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런 고액 연봉에 대한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도 명확하지 않다"며 "수신료 인상을 하게 되면 그저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면서 돈만 더 받겠다는 것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고 역설했다.
KBS 이사를 지낸 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공영방송이 전 세계적으로 '무용론'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공영방송의 역할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황근 교수는 "일본의 NHK는 최근 수신료를 삭감했고 뉴질랜드의 TVNZ는 수신료 자체를 없애버렸다"며 "공영방송의 역할은 '정치적 독립'과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인데 시청자는 점점 줄고 있고 우수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내지도 못하고 있다. 사람들이 보지도 않는 방송에 대해서 '왜 수신료를 내야 하느냐'고 반발하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황 교수는 "BBC의 경우엔 상대적으로 우수한 프로그램을 만들기 때문에 사람들이 기꺼이 비싼 수신료(컬러TV 보유자 기준 157.5 파운드, 약 25만 원)를 낸다"면서도 "그렇지 않은 방송이 수신료를 대부분으로 공영방송을 운영하겠다는 것 자체가 전 세계적으로 시대착오적"이라고 했다.
'정치적 중립'에 관한 문제점도 지적했다. 황 교수는 "우리나라의 수신료 인상은 국회 등을 거쳐 전부 정치적으로 결정된다"며 "언론이 권력에 열심히 잘 따라주면 수신료를 통해 매번 그에 대한 대가를 주는 것이다. 수신료 인상은 공영방송의 역할을 잘하라고 올려주는 게 아니라 정권에 충성했으니까 올려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