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우리나라에 이미 복지기술 기반의 비대면 공공 돌봄서비스가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다는 것은 아직 덜 알려진 것 같다. 돌봄을 받는 주요 대상이 사회적으로 고립된 취약계층인 독거노인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대표적으로 정부 차원에서 시행되는 기술기반 돌봄서비스로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2008년부터 중앙정부에서 시작된 독거노인 대상의 기술기반 돌봄서비스인 ‘독거노인·장애인 응급안전안심서비스’, 서울시에서 운영하고 있는 ‘독거어르신 건강안전관리솔루션 IoT(사물인터넷) 사업’, 기업과 사회적기업, 지자체의 민관협력으로 시행되는 ‘인공지능(AI) 스피커 돌봄서비스’ 등이다. 이것들은 취약계층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기술을 통해 위험이 감지되면 생활지원사가 방문하거나 119가 출동하도록 모니터링 시스템이 작동한다는 아이디어에서는 유사하다. 그러나 민관협력이나 기술적 측면, 구체적 운영방식과 서비스의 질 등에서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중앙정부와 서울시의 기술기반 돌봄서비스는 센서 장비를 통한 안전 모니터링과 고독사 방지를 목적으로 한다. 출발점부터 정부가 주도적으로 기획하여 민간의 제품을 입찰 구매하고 위탁 운영을 맡기는 등 전형적인 관 주도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적용 대상이 더 넓고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대신, 정책상의 제반 문제에 대한 환류와 변화가 느린 한계를 보여왔다. 정부가 고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들, 혹은 정부 실패가 사회혁신의 제약조건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있다.
AI 스피커 돌봄서비스는 민관협력형, 상향식으로 발전한 사례다. 이미 개발된 기업의 AI스피커 기술이 사회공헌 차원에서 사회적기업에 공유되고, 지자체와의 협력을 통해 지역의 독거노인에게 제공된 것이다. 이 서비스는 독거노인들에게 정서지원 프로그램과 치매예방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편, 음성만으로도 서비스를 손쉽게 이용하고 위급한 상황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지자체에서는 행정구청 관내 이벤트나 폭염, 한파 주의 안내 등의 소식을 전달하는 창구로도 이용하고 있다. 취약계층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기업-사회적기업-지자체가 협력한 대가는 참여한 모두에게 빠짐없이 풍족하게 돌아간다. 사회 공헌 차원에서 기술플랫폼을 공유한 기업도 취약계층 독거노인을 위한 공익서비스에 참여한 대가도 컸다. 이용 정보가 AI 스피커폰의 기술 플랫폼인 모기업의 AI서비스단으로 전달되어, 시니어 음성인식 성능을 개선하고 속도를 알맞게 조절하며 지역의 방언을 인식하는 등 다양한 측면에서 고령층에 적합한 음성 기술을 고도화하도록 환류되었다. 즉 기업은 이를 통해 전국적 차원에서 확실한 테스트베드를 제공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기업 이미지를 높이고, 자사의 유료 서비스 제품을 간접 홍보할 수 있는 효과는 물론이다.
민관협력형 복지기술 모델은 두 가지 방향으로 혁신적 확산의 단계를 맞이하였다. 첫 번째는 중앙정부의 지원을 통해 전국적 기술결합형 복지서비스로 확산된 것이다. 이 서비스는 2020년 사회혁신의 대표 사례로 채택되어 정부 국정과제인 ‘디지털 뉴딜’의 비대면 산업 육성 분야에 포함되었다. 전국 보건소가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건강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제공하는 ‘비대면 건강관리서비스’의 하나로 IoT 센서와 함께 AI 생활스피커가 보급된다. 물론 전국 사업으로 확대되는 만큼 공급자도 공모 기반으로 다원화되며, 2022년까지 독거노인 등 요보호 취약계층 총 12만 명에게 시범 운영된다.
두 번째 확산 경로는 취약계층 대상의 사회공헌형 공공서비스 운영 경험을 토대로, 구매력이 있는 일반 노인을 위한 소비자용(B2C) 서비스로 상품화한 것이다.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하여 민관협력으로 지역사회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한 초기 모델은 하나의 거대한 복지기술 리빙랩으로 작동, 결과적으로 이윤을 창출하는 비즈니스 모델로 확산하는 토대가 되었다. 이 경로는 향후 큰 시장이 될 ‘시니어 헬스케어’ 발전에 유의미한 시사점을 제공해준다. 서비스의 내용과 대상을 차별화하되, 유사한 혁신 경로를 통해 복지기술을 발전시키는 하나의 혁신 모델로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도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에는 지금 다양한 복지기술의 발전 모델들을 놓고 누가 더 잘하나를 비교하는 사회적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클라우드 슈밥은 2016년 발간된 저서 ‘제4차 산업혁명’에서 이 같은 질문을 던졌다. “기술발전을 통해 더욱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기술을 이용하여 곤란에 빠진 이들을 돕는 길은 무엇인가?” 더 많은 기업과 지자체, 시민들이 이러한 질문에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창의적인 실험과 혁신에 동참하게 되기를, 그 풍성한 열매를 우리 사회가 함께 누리게 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