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산 후 이공계 대학 랩실에서 근무 중인 A 씨는 혹여나 둘째가 생길까 무섭다. 둘째가 생겼다는 소식을 동료들에게 전할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너는 이제 공부(연구) 끝났구나’라는 시선이 눈에 선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18년 여성과학기술인 활용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일·가정 양립 지원제도는 매우 높은 수준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공계 대학과 공공ㆍ민간 연구기관에서 ‘출산 전·후 휴가’, ‘유·사산 휴가’, ‘육아 휴직’, ‘수유 시간의 보장’ 등의 제도 운영률은 100%에 육박한다.
하지만 이투데이가 만난 여성 과기인들은 하나같이 “제도는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 활용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출산휴가 3개월, 육아 휴직 1~3년이 보장되지만 이를 온전히 사용하기 어렵다는 것.
특히 “연구하는 사람이 3년 쉬면 평생 쉬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보통 연구 과제는 연구를 수주하는 시기에 떠오르는 이슈에 집중돼있다. 해당 시기를 놓치면 연구 의미를 상실하는 때도 흔히 발생한다. 연구를 접고 출산을 택하면 해당 시기의 연구를 모두 포기해야 한다. 일·가정 양립이 불가능한 이유다.
육아 휴직 시 연구를 맡길 대체인력 물색도 어렵다.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WISET)의 ‘일·가정 양립을 위한 R&D 분야 대체인력 활용 활성화 연구’에 따르면 대체인력을 채용할 때 어려웠던 이유로 ‘육아 휴직자와 유사한 역량을 갖춘 적임자 채용의 어려움’과 ‘대체인력 풀(당구) 부재에 따른 다양한 인력 정보의 부족’이 꼽혔다. 연구기관 입장에서 여성과학기술인의 결혼과 출산을 반기지 않는 이유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대체인력 매칭이 현실적으로 가장 큰 문제다. 이공계 분야 여성도 부족하지만, 특히 특수 전공분야는 더 적다. 육아 휴직에 들어가 버렸다고 하면 사실상 없는 사람을 만들어내야 한다”라고 전했다.
이어 “이런 부분까지 정책 하나하나 다 미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책의 디테일이 떨어진다는 것을 정부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임신ㆍ출산 이후도 문제다. 과거보다 남편과 공동으로 육아에 나서는 가정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여성이 책임지는 부분이 더 크다.
공공 연구기관에서 근무하는 D 씨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연구원에 수유실이 갖춰진 덕분이다. 아이가 분유를 못 먹어 1년간 모유 수유를 했는데, 생후 3개월 차에 출근을 시작해 시간마다 유축을 해야 했다. 업무차 잠시 타 기관에 파견 나간 때 수유 공간을 찾지 못해 황망했던 기억이 있다. 수유시설이 있어도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E 씨는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최소 두 번 유축을 해야 한다. 30분 정도 걸리는데 하루 한 시간이 비는 셈이다. 같이 연구하는 사람 입장에서 어떻게 보이겠나”라며 “실험을 계속 들여다봐야 하다 보니 결국 화장실에서 급하게 유축을 하는 예도 있다”라고 전했다.
실제 전체 이공계 대학과 민간ㆍ공공 연구기관 중 수유시설을 운영하는 비율은 20.6%에 그쳤다. 직장어린이집의 경우 설치의무에 해당하는 연구기관의 설치 비율은 67.4%에 그쳤고 비해당 기관은 설치비율이 극도(5.9%)로 낮았다.
일에 치이고 육아에 지친 여성 과기인들은 때로 연구책임자의 지위보다 팀원으로 남기를 자처하기도 한다. D 씨는 “(육아 부담이 있어) 매일 밤늦게까지 일하는 걸 솔직히 꺼리게 된다”라며 “그러다 보니 일정이 규칙적이고 도드라지지 않는 업무를 선호하게 된다”라고 전했다.
여성 과학기술인들은 경력단절을 줄이기 위한 지원책을 ‘여성’에 한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육아 휴직을 사용하는 ‘여성’ 과학자가 아니라 육아 휴직을 사용하는 모든 과학자에게 공통된 규정이 적용돼야 남성들도 육아 휴직이 두렵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