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기 전 ECB 총재, 이탈리아 ‘구원투수’로 등판…차기 총리 유력

입력 2021-02-03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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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제2차 대전 이후 최악 경제상황…성장률 -8.8%
마타렐라 대통령과 3일 새 연정 구성 논의
280조원 EU 지원금 사용처 결정 당면 정책과제 될 듯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이탈리아 차기 총리 유력 인사로 급부상했다. 사진은 2019년 7월 드라기 전 총재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ECB 통화정책위원회 회의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AP뉴시스
유럽 재정위기 당시 ‘경제 소방수’ 역할을 했던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이번엔 모국 이탈리아의 차기 총리 후보로 급부상했다. 드라기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경기 침체에 놓인 이탈리아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지 유럽 안팎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2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세르조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은 새 총리를 중심으로 내각을 꾸리겠다고 밝히면서 드라기 전 ECB 총재를 호출했다. 이들은 3일 만나 새 연립정부 구성을 논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드라기 전 총재는 대표적인 금융경제통으로 꼽힌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탈리아 재무부 고위 관료와 중앙은행 총재, 세계은행 집행 이사, 골드만삭스 부회장 등을 거쳐 지난 2011년 ECB 총재에 취임했다. 8년간의 ECB 총재로 재임하면서 ‘슈퍼 마리오’라는 별명을 얻었다. 2012년 유럽 재정위기 당시 시장에 꾸준히 “무엇이든 하겠다(Whatever it takes)”라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며 통화정책을 안정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 코로나19 대유행 와중에 유럽 경제를 뒷받침하고 있는 양적 완화 프로그램도 그의 손에서 시작됐다.

드라기가 총리에 오르게 되면 부실 우려가 있는 부채를 파악하는 등 이탈리아 경제 회복이 최우선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유럽연합(EU)이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타격을 최소화하고자 이탈리아에 제공하기로 한 2090억 유로(약 280조 원)를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당면한 정책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둘러싼 갈등은 이번 정국 위기를 부른 연정 붕괴의 시발점이었다.

이탈리아는 현재 코로나19로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8만8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경제도 심각한 충격을 받았다. 이날 이탈리아 국가통계청(ISTAT)은 지난해 이탈리아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8.8%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제2차 대전 이후 최악의 연간 성장률이다.

블룸버그는 이러한 상황에서 드라기 전 총재의 등판은 시장에서 환영받는 것은 물론 이탈리아의 정치적 음모론을 잠재울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로 마타렐라 대통령의 이날 결정이 알려진 후 미국 달러화 대비 유로화 가치는 상승했다.

마타렐라 대통령의 이번 결정은 지난달 이탈리아 연립정부 붕괴에 따른 정국 혼란이 3주째 이어지는 가운데 나왔다. 지난달 13일 마테오 렌치 전 총리가 이끄는 중도 정당 ‘생동하는 이탈리아(IV)’는 EU 코로나19 회복기금 사용 계획을 놓고 주세페 콘테 총리에 반기를 들며 연정에서 이탈을 선언했다. 이후 기존 연정구성 정당인 반체제정당 오성운동(M5S)과 중도좌파 성향 민주당(PD), IV 등 3당은 이날 저녁까지 재결합을 위한 협상을 했으나 결국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연정 붕괴 후 중재자 역할을 맡은 마타렐라 대통령은 이날 성명에서 새 정부가 구성될 수 없으면 지금처럼 가장 불확실한 시기에 조기 총선을 치를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코로나19 상황에서 조기 총선은 무리라고 판단, 새 총리 지명을 추진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엘리트 경제 관료 출신에 거부감이 큰 오성운동이 ‘드라기 내각’에 반대할 가능성도 있어 앞날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드라기 전 총재마저 정부 구성에 실패할 경우 남은 선택지는 조기 총선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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