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대환영…증시 2% 넘게 급등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모국 이탈리아 정국 위기 속에 새 연립정부 구성 요청을 수락했다. 금융시장은 이탈리아 ‘구원투수’ 드라기의 등장을 반기고 있다.
3일(현지시간) 미국 CNBC방송에 따르면 세르조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은 이날 오후 관저인 로마 퀴리날레 궁에서 드라기 전 총재를 면담한 뒤 총리 자격으로 내각을 꾸려달라고 요청했다.
드라기 전 총재는 면담 후 가진 브리핑에서 이러한 요청을 수락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국민을 대표하는 의회를 존중할 것”이라면서도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단합된 모습을 보여줄 것을 의회에 촉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시장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이날 이탈리아 밀라노 증시의 FTSE MIB지수는 2% 넘게 올랐고, 이탈리아 10년물 국채 금리는 6bp(bp=0.01%) 하락하는 등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채권 금리와 가격은 반대로 움직인다. 금리가 하락한 만큼 이탈리아 정부 차입 비용이 줄어든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CNBC는 이탈리아 국채 금리 하락은 시장에서 새 내각에 대한 신뢰를 보내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산탄데르은행의 아나 파트리시아 보틴 회장은 “드라기는 ECB 총재 재임 당시 몇 단어, 몇 문장만으로도 시장을 안정시키는 등 수장으로서 임무를 잘해냈다고 생각한다”면서 “그가 이탈리아에서도 그렇게 해낼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환영했다.
시장에서는 드라기 전 총재는 위기 극복에 초점을 맞춘 관료 중심의 실무형 거국 내각 구성을 타진할 것으로 예상했다. 내각 구성권을 넘겨받은 드라기 전 총재는 2011년부터 8년간 유럽연합(EU)의 통화정책을 총괄하는 ECB 사령탑을 지냈다.
2012년 유럽 재정위기 당시 시장에 꾸준히 “무엇이든 하겠다(Whatever it takes)”라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며 통화정책을 안정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8년간의 ECB 총재로 재임하면서 ‘슈퍼 마리오’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드라기가 내각 구성에 성공한 후 당면하게 될 과제는 산적해 있다. 특히 유럽연합(EU)이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타격을 최소화하고자 이탈리아에 제공하기로 한 2090억 유로(약 280조 원)를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최우선 정책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둘러싼 갈등은 이번 정국 위기를 부른 연정 붕괴의 시발점이었다.
다만 그가 의회의 협조 속에 순조롭게 내각을 꾸릴 수 있을지, 혹은 새 내각이 의회 신임을 받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새 내각은 상·하원의 신임안 표결에서 과반의 지지를 받아야 공식 출범할 수 있다.
당장 원내 최대 정당인 오성운동은 ‘테크노크라트(전문 관료) 정부’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야권인 ‘우파연합’의 맹주로 전국 지지율 1위를 달리는 극우 정당 동맹(Lega)도 여전히 조기 총선을 선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