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B "쌤은 몸도 예쁘고 가슴…마음도 예쁘지~너희 왜 웃어? 상상했어?"
교장 "옷을 그렇게 입는 게 문제다. 교사가 참고 넘어가야 한다"
경기도 지역의 한 중학교 교사가 학생들에게 공개적으로 상습 성희롱을 당한 후 이 사실을 학교에 알렸지만, 오히려 학교 측에서 사건을 은폐 시도하고 2차 피해도 봤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교내 성폭력 문제의 심각성이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교내 성폭력 근절을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성희롱을 덮고 2차 가해한 학교 관리자에게 징계 내려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 글이 올라왔다. 이 청원은 5일 오전 10시 기준 2만5000여 명의 동의를 받은 상태다.
자신을 경기도교육청 소속의 한 중학교 교사라고 밝힌 청원인은 2019년 9월부터 12월까지 학생들에게 상습적인 성희롱을 당했다고 밝히면서 "교장에게 학생들의 성희롱 때문에 힘들다고 말했으나 아무 조처를 해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청원 글에 따르면, 학생들은 "쌤 자취하세요? 누구랑 사세요? 아 상상했더니 코피 난다" "'쌤은 몸도 예쁘고 가슴…. 마음도 예쁘지~ 너희 왜 웃어? 상상했어?" 등의 발언을 웃으며 말했다.
학생들의 성희롱을 견디다 못한 청원인은 교장과 교감 등 학교 측에 피해 사실을 알린 뒤 교권보호위원회(교보위)를 신청했다. 당시 성희롱 상황을 목격한 학생들의 사실진술서도 학교 측에 제출했으나, 학교 측의 소극적 태도로 결국 교보위는 열리지 못했다고 청원인은 설명했다.
청원인은 교보위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교장의 2차 가해가 있었다고도 주장했다. 교장으로부터 "예뻐서 그런 거다", "옷을 그렇게 입는 게 문제다. 붙는 청바지를 입지 마라", "요즘 젊은 애들 미투다 뭐다 예민하다. 교사가 참고 넘어가야 한다" 등 2차 가해성 발언을 들었다는 것이다.
청원인은 "성희롱 탓이 제게 오는 게 너무 끔찍해 긴 머리를 단발로 자르고, 그 이후로 옷이 흠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더 가리고 헐렁하고 두꺼운 옷만 입고 다녔다"며 "트라우마로 정신과에서 상담받고 약도 먹었고, 너무 괴로워서 경기도교육청에 다른 학교로 옮길 수 있냐고 물어봤지만 연차가 부족해 안 된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말했다.
청원인은 글 말미에 "제가 원하는 것은 성희롱 사건을 은폐하고, 2차 가해한 교장의 공무원직을 박탈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정년 퇴임을 앞둔 교장이 박수받으면서 물러나고 앞으로 월 몇백씩 연금을 수령하게 된다"며 "그 사람이 앞으로 평생 연금 받지 못하길 바란다. 성희롱 사건 은폐에 일조한 교감도 징계받기를 원한다"고 호소했다.
'성희롱'·'폭언' 등 학생에 의한 교권 침해는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에 따르면 교권 침해 사례는 과거보다 크게 늘었다. 지난달 중순 교총에서 발표한 ‘2019년도 교권보호 및 교직상담 활동보고서’에 따르면, 학생에 의한 교권 침해는 2018년 70건에서 지난해 87건으로 크게 늘었다. 행위 유형별로는 폭언‧욕설 32건(36.78%), 명예훼손 24건(27.59%), 수업방해 19건(21.84%), 폭행 8건(9.20%), 성희롱 4건(4.60%)으로 집계됐다.
여성 교사를 향한 성폭력도 비일비재하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여성위원회와 참교육연구소에서 지난 2016년 전국의 유치원과 초·중·고교에 근무하는 여성 교사 175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교직 생활 동안 성희롱과 성추행 등 넓은 의미의 성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70.7%로 집계됐다.
가장 빈번한 종류의 성폭력은 회식자리에서 교사나 교장·교감이 술 마시기를 강요하거나 남자 교사에게 술을 따르도록 강제하는 형태로 53.6%의 응답률을 보였다. 이어 노래방 등 유흥업소에서의 춤 강요가 40%, 음담패설 등 언어적 성희롱이 34.2%, 부적절한 신체접촉이 31.9% 순(복수응답 허용)으로 나타났다.
손지은 전교조 여성부위원장은 여성 교사를 향한 성희롱 사건이 흔하게 발생하고 있지만, 학교 측의 소극적인 태도로 쉬쉬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손지은 위원장은 "공식적으로는 발표되고 있지는 않지만 이미 교사들 사이에서 특히 여성 교사들 사이에서는 이런 문제 제기가 많이 되고 있다"며 "남성 중심 문화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조롱하거나 혐오 표현 등을 사용하는 것들이 이제 그대로 학교로 들어와 여성 교사로 향하게 되는 것"이라고 봤다.
손 위원장은 "청원에 나왔다시피 피해를 입어도 교장·교감 등 위계가 높은 사람들로부터 쉬쉬하라는 압박을 많이 받고 있다"며 "학교에서는 '교보위'와 같이 교권 차원에서 보통 접수되지만, 교권이 사실상 직급이나 위계의 차원이다 보니 성폭력과 관련해선 많이 다뤄지지 않고 있다. 단순히 절차상으로만 사과를 받다 보니 피해자가 치유를 받거나 회복되지는 못하는 상황으로 가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재발을 막을 대책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성인지 관점이 학교 안에서 충분히 공유되는 문화가 일차적으로 필요하다. 사안이 발생하면 가해자에 대해서도 징계나 처벌을 명확하고 강력하게 해야 한다"면서도 "교육청 등 학교의 폐쇄적 문화를 깨뜨릴 수 있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성 평등 관련 담당 부서를 전국적으로 마련하고 특히 피해자 회복을 위한 지원도 필요하다"고 답했다.
한편, 경기도교육청 성 인권 담당 부서는 "교육청에서도 보고가 들어와 담당 지역교육청으로 이관했다"며 "지역교육지원청에서 해당 사안을 받은 다음 바로 조사에 착수해 피해자·가해자를 조사했다고 알고 있다. 조사가 완료되면 다음 주 정도에 성희롱고충심의위원회를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