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vs 정유·여행 ‘희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산업별 희비가 갈렸다. 언택트 바람을 탄 반도체와 게임 관련 기업들은 양호한 실적을 나타냈다. 반면 정유·여행업계는 처참한 성적을 보였다.
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제조 능력의 전통적 강자인 삼성전자는 코로나19 수혜로 연결 기준 지난해 매출은 236조8100억 원, 영업이익은 36조 원을 기록했다. 4분기 영업이익은 9조470억 원으로 시장 기대치인 9조31461억 원에는 밑돌았지만, 전년 동기(189억 원) 대비 증가폭을 키웠다.
이 같은 실적 선방의 일등 공신은 반도체다. 지난해 삼성전자 반도체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2% 늘어난 72조8600억 원, 영업이익은 34% 증가한 18조8100억 원을 기록해 삼성전자 전체 영업이익의 절반 이상이 반도체에서 나왔다. 삼성전자는 대대적 M&A(인수합병)와 시설 투자에 공격적 투자를 예고했다.
SK하이닉스 역시 지난해 영업이익 5조126억 원, 매출액 31조9004억 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84.3%와 18.2% 증가했다. 2018년 이후 2년 만에 연간 영업이익 5조 원대를 회복했다.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9659억 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298.3% 늘었다. SK하이닉스의 지난해 영업이익이 4조9512억 원일 것으로 예상했으나, 이를 뛰어넘는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SK하이닉스 측은 “가격 하락에 따른 매출 감소와 달러화 약세에도 지난해 3분기부터 이어진 모바일 수요 강세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전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늘었다”고 설명했다.
증권가는 반도체 업황 회복세가 뚜렷해 중장기적 성장 전망이 밝다는 분석이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가격은 수요 확대에 기반한 상승세가 뚜렷하다”며 “올해 중 2018년 역사적 고점을 넘어설 가능성이 크고 반도체 사이클을 감안할 때 최소한 2022년까지 사이클 상승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매년 ‘상고하저’의 실적을 보였던 LG전자는 코로나19에 따른 ‘집콕’과 ‘보복 수요’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 지난해 창사 이래 최대 매출과 영업이익을 냈다. LG전자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3조 1950억 원으로 전년보다 31.1% 늘었고, 매출은 전년보다 1.5% 오른 63조2620억 원이었다.
LG전자가 지난해 최대 실적을 올린 것은 주력인 생활가전과 TV 부문 덕분이다. 특히 의류관리기와 건조기, 식기세척기 등 프리미엄 신가전 판매가 호조를 보이면서 생활가전(H&A)에서만 지난해 매출 22조2691억 원, 영업이익 2조3526억 원이라는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다. 연간 영업이익률(10.6%)도 처음으로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LG화학은 처음으로 연매출 30조 원을 돌파했다. 영업이익은 2조3532억 원으로 전년 대비 185.1%가 증가했다. 4분기 영업이익은 6736억 원으로 시장전망치(7269억 원)에는 못 미쳤지만, 전년 동기(189억 원) 대비 실적 증가폭이 컸다. LG생활건강은 지난해 7조8445억 원의 매출과 1조2209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 16년 연속 성장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양지환 대신증권 연구원은 “구광모 대표 취임 이후 성장과 혁신 그리고 계열 분리를 통한 핵심 사업으로의 역량 집중 등 경영상의 긍정적인 변화를 LG 주가가 반영하고 있다”며 “미래사업에 대한 투자와 역량 집중으로 2021년 LG 재평가의 원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게임 기업은 단연 코로나19의 최대 수혜자로 지난해 최대 매출을 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국내 증시에서 ‘팔자’ 행렬을 이어온 외국인이 유독 게임주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다. 외국인이 올해 순매수한 넷마블 주식만 1조2189억 원으로 집계됐다. 엔씨소프트는 최근 6거래일 동안 1195억 원의 주식을 사들였다. 황현준 DB투자증권 연구원은 “넷마블의 올해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각각 9%, 55% 증가할 것”이라며 “최근 빅히트와 엔씨소프트의 주가 상승 및 카카오뱅크의 기업가치 상승으로 동사 보유 지분의 가치도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정유와 여행 업계는 코로나19로 최악의 실적을 내놓았다. 국내 정유업계 1위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연간 영업손실이 2조5688억 원으로 적자 전환했고, 에쓰오일도 1조877억 원의 영업손실액을 내 사상 최대 폭의 적자를 기록했다.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까지 모두 합한 국내 정유 4사의 지난해 연간 적자 규모는 5조 원대에 이를 것으로 증권가는 전망하고 있다.
항공·여행 관련 기업도 마찬가지다. 호텔신라는 연결 기준 작년 한 해 영업손실이 1853억 원을 기록, 적자 전환한 것으로 집계됐다. 아모레퍼시픽도 지난해 4분기 영업손실 92억 원을 기록, 적자 전환했다. 매출액은 1조1569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3% 줄었다.
다만 이들 기업에 대한 매수 의견은 유지되고 있다. 박상준 키움증권 연구원은 “코로나19 백신 접종 이후 해외여행 재개 시점이 호텔신라 주가의 반등 시점과 강도에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오린아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아모레퍼시픽은 국내 사업이 대체로 바닥을 찍었지만, 럭셔리·디지털을 통한 중국 사업 체질 개선에 주목할 만하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