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NE컨설팅 고문, 동국대 명예교수, 전 한국국제통학회장
2월 중 시작될 것으로 보이는 백신 접종으로 연말이면 집단면역을 확보하여 코로나19 극복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또 다른 재정지출을 약속하고, 타당성이 없다고 이미 판명된 가덕도 신공항 추진을 다시 거론하는 이유를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경제학에 정치적 경기순환(political business cycle)론이란 게 있다. 정책 추진의 이유를 경제적 측면이 아니라 정치적인 동기에서 찾을 수 있다는 이론이다.
2008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이에 따른 글로벌 금융위기도 월가의 금융기법에 대한 지나친 믿음에 더하여 정치적인 지지를 위해 서민들에게 집을 가질 수 있도록 공적 보증기관으로 하여금 무조건 보증을 제공한 데서 그 근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2012년 그리스 재정위기의 원인 또한 공무원 증원으로 일자리 창출을 대신하고 퇴직 후 연금 보상을 최고 95%까지 해주는 퍼주기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이를 입증하는 사례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결과는 서민 파산의 양산으로 대표되는 미국 경제의 파탄과 사건 당사자인 거대 금융기관 구제를 위한 막대한 자금의 지원, 그리고 불평등의 확대였다. 미국발 금융위기는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이른바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리스의 경우는 어떤가? 항만, 공항 등 국가의 주요 인프라 자산의 해외 매각 및 운영권의 외국 양도에 의한 경제적 식민지화였다.
미국이야 기축통화국으로서 구제금융 제공으로 거대 금융기관을 회생시킬 수 있었고 오히려 달러 가치의 상승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리스의 경우 아직도 빚에 허덕이고 있고 대학 졸업생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하여 독일과 같은 경제강국으로의 취업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는 처참한 상황이다. 강요된 내핍과 전문인력의 유출 사태는 단기적인 충격의 문제가 아니다. 빚내서 운영하는 경제가 어떻게 되는지는 그리스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멕시코,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의 여러 나라에서도 목격해 왔다.
우리 또한 1997년 외환위기가 외자 유출 및 기존 대출의 만기 연장 거부를 거쳐 금융위기로 발전하고, 이에 따라 국내 수많은 은행들의 줄도산과 통폐합, 기존 은행들의 대출 회수로 인한 신용경색이 경제위기로 번져가는 과정을 겪은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멀쩡한 중견 사업자들의 가정을 파탄 내고 이들을 길거리로 몰아내었던 기억 또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모두 인기영합적 퍼주기가 초래한 사태들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와해가 심각한 현시점에서 상생연대 3법의 근본 취지는 충분히 공감한다. 그러나 추진 방법에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우선 사적 재산권 보호와 자유로운 경제활동이라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원리에 충실하도록 유인체계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시장원리를 무시한 부동산 정책의 실패로 인한 3040세대들의 좌절과 ‘영끌’로 구입한 주택가격의 버블이라는 잠재된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우리 경제는 반도체의 환상에서 벗어나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될 가능성이 크다.
경제에 ‘공짜 점심’은 없다. 공식적인 권한(entitlements)을 부여하는 정책은 되물리기 어렵고 지속적인 재정 소요가 발생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발동 요건, 제도 추진 및 정착 방법 등을 신중하게 설계해야 한다. 정책 설계에 실패할 경우 앞으로 발생할 끊임없는 재정 소요로 국가 재정은 머지않아 거덜날 것이다. 이번에는 재정위기다.
가덕도 신공항의 경우 또한 새롭게 사업 추진을 거론하는 합리적인 이유를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여야가 표를 얻기 위한 정책공약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른바 ‘바닥으로의 경쟁’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1997년 외환위기의 교훈을 되새겨 국민들이 현명한 판단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