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지금] 미·중 갈등과 EU의 ‘오드 맨 아웃’ 전략

입력 2021-02-1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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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정 동아대학교 국제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10년을 돌이켜 국제사회에서 가장 중대한 사건은 미·중 갈등이라 하겠다. 미국과 중국은 통상, 외교안보, 기술 등 국가관계 전 분야에서 경쟁 중이다. 미·중의 통상전쟁과 안보경쟁의 과열 양상은 이와 연계된 전 세계 국가들에도 영향을 미쳐왔다. 특히 미국의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기간은 중국과의 패권경쟁과 주요국과의 통상마찰로 점철된 시간이었다. 트럼프의 경제 오른팔이었던 피터 나바로는 2015년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으로 업무를 시작해 2020년 백악관 무역·제조업 정책국장, 백악관 고문을 역임하며 중국과의 통상전쟁을 이끌었다. 나바로는 ‘웅크린 호랑이(Crouching Tiger)’, ‘차이나 이펙트’ 등 다수의 저서를 통해 일찌감치 중국을 정조준해왔다. 이러한 경제철학을 토대로 한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우선주의’ 원칙을 위해 2017년 “미국의 무역적자 문제에 있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for the lion’s share of the deficit problem)”로 중국, 한국, 인도, 독일, 아일랜드, 베트남, 스위스, 대만 등 16개 국가를 지목하고, 미국의 입장에서 자유롭고 공정하며 상호적인 무역 증진을 촉구해 왔다.

이제 정권이 교체된 2021년, 바이든 정부는 이전의 일방주의 외교를 종식시킬 것인가. 바이든 대통령은 파리기후변화협약, 세계보건기구(WHO)에 복귀하며 전 정권이 어지럽힌 국제질서를 회복시켰다. 또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의 공동방위 공약 재확인, 한미동맹 강화 등을 통해 동맹국과의 안보결속을 다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중국과의 대립적 구도를 그대로 이어갈 전망이다. 중국은 새 정부가 들어서고 흔히 주고받는 축전도 미뤄왔다. 바이든 대통령 취임 3주 만에 겨우 이루어진 미·중 정상 간 통화 후에도 미국은 중국의 경제굴기에 우려를 나타내며 극한 경쟁을 이어 나아갈 것을 피력했다.

미·중의 갈등과 경쟁은 주변국에도 책임과 피해가 전가되어 왔다. 특히 미국과 안보 동맹관계인 유럽, 한국 등은 최대 교역 국가인 중국과의 관계에서 난처한 상황에 부닥쳐왔다. 하지만 미·중 갈등 속에서 유럽연합(EU)은 다각적 전략을 통해 나름의 균형과 조정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EU는 인권 및 환경 등 규범 분야에서 원칙을 고수하고, 통상 및 안보 분야에서 3자 중 양자 간 안정적 협력 관계의 중심축이 되는 전략, 즉 오드 맨 아웃(odd man-out)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국제관계 학자들은 3자 간 관계에서 이익을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두 참여자의 연합뿐임을 검증하였다. EU 집행위원회는 중국을 협력 파트너이자, 이해의 균형을 찾기 위한 협상 대상자, 기술 리더십을 추구하는 경제적 경쟁자 그리고 체제에서의 라이벌로 명시하였다. 즉 EU는 각 영역에서 중국을 서로 다른 대상자로 규정하여 협력 혹은 경쟁하겠다는 것이다. 유럽은 ‘NATO 2030’ 보고서에서 중국을 외교안보적으로 잠재 위협국가로 지정하고, 중국의 영향력과 규모가 민주주의 사회에 심각한 도전을 제기하고 있음을 경고하였다. 하지만 EU는 7년간 끌어왔던 중국과의 투자협정(EU-중국 포괄적 투자협정)을 체결하며 양자 간 투자의 반석을 다졌다. 미국과의 관계 또한 돈독하다. EU는 지난해 미국에 ‘세계 변화에 대한 새로운 EU-미국 의제’란 제목의 제안서를 제시하였다. 양자가 협력하여 반독점 집행과 정보 보호, 민감한 분야에 대한 외국투자 감독, 사이버 공격 대응 협력 등 디지털 규제 환경을 구축하고 코로나19 백신 개발·보급과 세계보건기구(WHO) 개혁, 기후변화 대응 등에서 의제를 주도하자는 내용이다. 또한 중국의 기술굴기에 맞서 EU는 바이든 신행정부에 ‘범대서양 무역기술위원회’ 설립을 제안하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은 평화로운 대륙을 지향하며, 연합 차원에서 안보협력을 추구해 왔다. 이들은 냉전 구도하에서 철저한 동맹관계에 따라 안보위협에 대응해 왔으며, 탈냉전 시기 다자적 논리에 의해 안정을 추구해왔다. 경제평화기구(Institute for Economics&Peace)에서 산출하는 세계평화지수(GPI)에서도 유럽은 가장 안정된 평화지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중 갈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평화와 안녕의 유지를 위한 유럽의 오드 맨 아웃 외교전략은 국제관계 균형자로서, 나아가 중견국 외교의 표본으로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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