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인치 파운드리 업체인 DB하이텍이 반도체 수요 폭증에 올해 연 매출 1조 원을 돌파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증설을 비롯한 미래 성장전략을 두고 고심에 빠졌다.
2년 가까이 공장 완전가동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서 증설 유인은 충분하지만, 8인치 파운드리 특성상 대규모 증설이 곧바로 수익성으로 직결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최근 장비 감가상각비가 증가하는 등 8인치 장비 특성에 따른 장기 전략 수립 필요성도 증대했다.
17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DB하이텍의 올해 매출액과 영업이익 전망치는 각각 1조134억 원, 2642억 원으로 창립 이래 처음으로 1조 원 매출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해 역시 매출액 9359억 원, 영업이익 2393억 원으로 전년 대비 15.92%, 32.02% 증가한 호실적을 냈다.
시장에선 '증설' 여부에 가장 큰 관심을 두고 있다. DB하이텍은 경기도 부천 공장과 충북 음성 공장을 지난해 4월부터 2년 가까이 완전가동 해왔다. 더군다나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따라 올해 추가 물량 확대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회사로선 쉽사리 증설을 택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이는 8인치 장비와 여기서 생산되는 주요 제품들의 특성에 기인한다.
과거 8인치 공정이 ‘구식’으로 취급받으며 업황이 좋지 않았을 때 장비업체가 대거 철수하다 보니 현재 신규 장비를 만드는 곳을 찾기 쉽지 않다. 생산되는 신규 장비가 없다는 건 장비 노후화 문제, 감가상각 문제와도 직결된다.
실제로 DB하이텍에선 최근 기계장치 내용연수를 11년에서 6년으로 변경하면서 감가상각비가 227억 원 발생했다.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이 시장 전망치(543억 원)를 훨씬 밑도는 304억 원을 기록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내용연수는 설비 등 고정자산의 사용 가능한 일정 기간인데, 현재 DB하이텍이 가진 8인치 장비의 사용 가능 기간이 그만큼 적게 산정됐다는 의미다. 신한금융투자 등 증권업계는 올해 DB하이텍의 감가상각비가 기존 대비 연간 약 900억 원 증가하리라 전망한다.
회사 관계자는 “통상 장비 내용연수를 10년 수준으로 설정했는데, 감가상각 기간이 길다는 회계법인 권고가 있어 이를 반영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8인치 장비를 통해 생산되는 전력 반도체(PMIC), 디스플레이 구동칩(DDI), 이미지센서 등이 다품종 소량생산 품목이라는 점도 증설을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다.
대규모 증설에는 최소 3~4년가량이 소요되는데, 그동안 반도체 수요가 유지될 것도 확실치 않을뿐더러 증설이 완료된다 하더라도 곧바로 고수익으로 직결될 수는 없는 사업 구조기 때문이다.
우선 DB하이텍은 대규모 증설보단 상황에 맞는 보완 증설을 통해 수요에 대응해나가겠다는 방침이다. 지난해엔 월 생산능력을 7000장가량 늘려 13만 장까지 키웠고, 올해에도 5000~1만 장가량의 생산능력 확대가 점쳐진다.
공급 부족 상황이 이어지면 추가 가격인상 조치도 뒤따를 수 있어 대규모 증설 없이도 올해 사상 최대 실적 기록은 어렵지 않으리라는 것이 업계 관측이다.
최도연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DB하이텍은 이미 2021년 연간 수주 물량을 대부분 확보한 것으로 파악된다"라며 "장치 가속상각 이후 물리적인 증설이 진행될 경우 비용 부담이 완화될 수 있다. 중장기 전략 설정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엿보인다"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