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차장
요즘 새로 나오는 자동차는 '자율주행' 기술을 강조합니다. 국산차의 경우 5단계 레벨 가운데 이제 막 레벨2를 벗어나는 수준인데요. 자동차 선진국인 미국과 독일 역시 기술력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자율주행차를 초기에는 '무인자동차'로 불렀습니다. 이름 그대로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 스스로 달리는 차를 뜻한 겁니다.
그러나 '무인(無人)'이라는 단어가 가져오는 공포감이 꽤 컸습니다. "운전자가 없으면 자칫 잘못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것이지요.
결국, 자동차 회사는 무인자동차 대신 '자율주행차'라는 이름을 찾아냈습니다. 결과도 꽤 성공적이었지요. 자동차 회사가 언어와 문화를 만들어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SUV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세계 최초의 SUV는 지프(Jeep) 체로키인데요.
누가 이름을 지어준 게 아닙니다. 1974년 지프가 제품 안내서에 ‘SUV’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던 게 시작이었습니다. 그들이 SUV라는 단어를 제시했고, 시장과 소비자가 이를 받아들인 것이지요.
국내에는 1990년대 자동차 전문지에서 이런 SUV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차를 마지막으로 수입차 시장이 전면 개방되면서 우리에게도 이런 SUV라는 단어가 점점 친숙해졌지요.
SUV는 요즘 우리나라뿐 아니라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대세입니다. 그러다 보니 차종도 많아졌고 다양한 모양새와 성능을 지닌 새 모델이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애초 ‘네 바퀴 굴림 기능을 갖춘, 지프 형태의 자동차’라는 SUV의 정의도 점진적으로 폭을 확대하고 있지요.
다만 다른 나라의 언어가 우리에게 일반화되다 보니 갖가지 오류도 나옵니다.
SUV는 ‘Sports Utility Vehicle’을 의미하는데요. 여기에 포함된 ‘비클(Vehicle)’은 자동차를 뜻합니다. 결국 “SUV 자동차”는 틀린 말입니다. 그냥 “SUV”라고 해야 맞습니다.
우리가 쉽게 남발하는 ‘차량’이라는 단어도 틀렸습니다.
애초 차량이란 열차의 객차 또는 화물차를 “한 량, 두 량, 세 량” 등으로 셀 수 있는 단위입니다. 기관차에 의지해서 달려가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고 일정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객차(또는 화물차)를 차량이라고 부릅니다.
그뿐인가요. 우리 주변에 자동차와 관련된 영상 또는 글을 접할 때마다 “첨단기능을 탑재했다”라는 표현을 흔하게 봅니다.
‘탑재(搭載)’의 사전적 의미는 배나 비행기 자동차에 물건을 싣는 행위입니다. 물리적으로 얹어 놓은 물건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이 경우 “첨단기능을 갖췄다” “신기술을 사용했다” 등으로 순화할 수 있습니다.
‘적용’도 대표적인 언어 공해로 꼽힙니다. “다양한 기능을 적용했다.” “새로운 장비를 적용했다.” 등은 모두 틀린 말입니다. 적용(適用)이란 법 또는 제도에 한해서만 쓸 수 있는 단어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언어의 오류는 어디에서 시작했을까요. 네 맞습니다. 바로 자동차 회사입니다.
자동차 회사의 홈페이지, 안내서, 사용설명서 심지어 언론사에 배포하는 ‘보도자료’에도 이런 오류가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적용이나 탑재 등 어려운 단어를 쓸수록 제품이나 기업의 가치가 높아진다는, 그릇된 생각에서 나온 현상들입니다.
이런 오류를 짚어낼 때마다 반대편에서는 “어떻게 맨날 사전 챙겨 다니며 그런 단어를 골라낼 수 있겠느냐”고 합니다. 그만큼 너무 많은 오류가 우리 주변에 익숙한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는 뜻도 됩니다.
그렇다고 이렇게 차고 넘치는 오류와 언어 공해를 마냥 두고 볼 수는 없습니다. SUV라는, 자율주행차라는 적절한 단어를 자동차 회사가 만들어낸 것처럼, 이제 스스로 자성하고 고쳐나가야 합니다. 지금 당장 무엇이 잘못된 단어였고 엉뚱한 표현이었는지 고민해보기 바랍니다.
juni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