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3년 전 투자한 일본 반도체업체 키옥시아 지분 투자로 약 1조7000억 원가량의 평가이익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하반기 예정됐던 일본 증시상장이 미뤄진 상황에서도 적지 않은 지분 이익을 본 것이다.
다만 향후 투자한 지분 활용법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업계에선 낸드 사업 경쟁 관계에서 기술 협력이 어려운 만큼 투자자금 회수를 추진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지만, SK하이닉스 측은 “장기적인 안목의 투자”라는 입장이다.
3일 SK하이닉스가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지난해 연결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회사가 보유한 키옥시아(KIOXIA Holdings Corporation) 특수목적 법인 지분과 전환사채(CB) 총액을 5조9467억 원으로 인식했다.
SPC 법인 지분은 3조5955억 원, CB 평가액은 2조3512억 원 수준이다. 총자산의 8.36%에 해당하며, 투자 원금과 비교하면 약 1조6853억 원가량의 평가이익을 냈다고 회사 측은 적시했다.
SK하이닉스는 2018년 당시 키옥시아의 전신인 도시바메모리 지분에 4조 원가량을 투입했다. 항목별로는 베인캐피탈이 조성하는 펀드에 유한책임사원(LP) 자격으로 2조6371억 원, 전환사채(CB) 인수에 1조2789억 원이다.
키옥시아는 지난해 하반기 일본 증시에 상장 절차를 진행했지만, 미ㆍ중 무역 갈등 여파로 상장이 미뤄진 상태다.
상장 과정을 둘러싸고 SK하이닉스가 일차적으로 자금 회수를 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지만, 상장 시기가 늦춰지며 지분 이익이 회계상으로 반영됐다. 가치평가 과정에서도 상장(IPO)을 비롯한 미래 예상 청산 시점의 키옥시아 지분가치가 기준이 됐다.
현재 SK하이닉스와 키옥시아는 지분 관계로 얽혀있지만, 기술과 시장점유율 면에선 경쟁을 펼치는 양면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SK하이닉스가 인텔 낸드 사업부 인수에 나서며 낸드 시장 내 경쟁 구도가 더욱 미묘해졌다. 지난해 기준 낸드 시장에선 키옥시아가 19%로 업계 2위, SK하이닉스가 10%로 4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SK하이닉스가 인텔 낸드 사업부(9%)를 인수하게 되면 키옥시아를 넘어서 2위가 되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의 가파른 추격세를 의식한듯 키옥시아는 지난해 하반기 11조 원 규모의 증설을 발표하고, 최근엔 ‘더블스택’ 공정을 적용한 낸드 신제품을 발표하는 등 반격에 나섰다.
업계에선 이를 두고 SK하이닉스의 지분 투자목적과 인수 이후 상황이 불합치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SK하이닉스의 키옥시아 지분 투자는 기술력 시너지를 위한 것이었지만 단기적으론 원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는 도시바메모리 인수전 당시 일본 정부의 기술 유출 우려 등으로 인해 바뀐 딜 구조 영향이 크다. 인수 이후 10년간 의결권 15% 이상을 보유하지 못하게 한 것을 고려하면, 2028년까지 SK하이닉스는 키옥시아의 중요한 경영 의사결정에 개입할 수 없다.
낸드 컨트롤러 등 낸드 관련 원천 특허나 기술력이 절실히 필요했던 SK하이닉스가 인텔 낸드 사업부로 손을 뻗은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증권가 등에선 SK하이닉스가 인텔 인수대금을 마련하는 창구로 키옥시아를 활용할 것이라는 분석도 지속해서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낸드 시장과 SK하이닉스, 키옥시아 양사의 입지상 기술 협력이 오간다고 보기는 어렵다”라며 “현재 상황만 놓고 보면 SK하이닉스의 키옥시아 투자는 경쟁사 리스크의 헤지(Hedge·손실 위험 방지) 정도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회사 측은 키옥시아 지분 투자를 중장기적으로 들고 간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3분기 실적 발표에서 이석희 최고경영자(CEO)는 직접 낸드 사업의 방향성을 설명하면서 “인텔 낸드는 즉각적인 효과를 보고 투자하는 것이고, 키옥시아는 좀 더 중장기적 안목으로 진행한 전략적 투자”라고 언급했다.